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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담 Dec 31. 2016

이름을 바꿔보려다가

 

“선생님, 선생님 따님... 가슴 되게 큰 여자예요?”


엄마가 직장에서 들은 질문이다.


“아니, 걔 별로 안 커. 근데 그게 무슨 소리야?


굳이 안 크다고 대답을 해줄 건 또 뭔가 싶은데, 어쨌든 사연은 이랬다.


그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내 이름을 알고 있던 엄마의 직장 동료가 네이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았는데, 가슴이 정말 되게 큰 여자가 나왔다는 것.


아, 또 그 여자구나.


나는 이미 그녀를 알고 있다.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대략 2012년 경이었던 것 같다. 작은 방송사에서 아나운서 일을 시작하게 돼, 네이버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사소한 기사 같은 것이 몇 개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는데, 거기에는 이미 다른 정소담이 있었다. 그녀의 존재를 역시 이미 알고 있었던 엄마는, 동료에게


“아냐, 그 정소담은 비아그라 모델이구 내 딸이 아니야.”


라고 가뿐히 답했주었다 한다.


'엄마, 비아그라 모델이 아니라 그라비아 모델이래. 근데 그게 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새벽에 그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그 어머니의 놀란 목소리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소담이가 이런 애였느냐! 역시 아들의 여자친구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해보신 결과였다.


이것저것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그녀의 존재는 내게 여러 번 일깨워졌다. 내가 모델일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검색을 통해 만난 G컵 그녀를 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딘지 모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분이셨군요?” 하고 묻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라비아 모델이 무엇인지도 나는 잘 모르고, 그 직업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생각도 없지만 어쨌든 그걸 본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런 일’이라고.


최근에는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필명을 따로 써볼까 잠시 생각했었다. 어차피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전부 나를 친근하게 '담이'라고 부르니까, 가운데 한 글자 뺀다고 해도 나로서는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낯설지도 않아서. 그냥 정담이라는 필명으로 지내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근데 이걸 한 2주 해보았더니 어쩐지 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사는 건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필명을 쓴다는 게 몹시 낯간지럽기도 하고. 그래서 잠시간의 정담 行을 멈추고 다시 정소담으로 돌아왔다. 이 이름으로 살았던 대략 30여 년의 시간은 무척이나 고된 여정이었지만, 그 고초를 함께 겪은 이름 석자를, 이제 좀 살만해졌다고 버려두는 건 어쩐지 안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정담이라는 이름은 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단호히 평했다. "너의 몸뚱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라든가 "너는 이미 너무 소담이야" 라든가 "정담이라니 그건 흡사 스님의 이름이야" 라든가.


무엇보다, 무언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기에는 나는 내 이름을 많이 좋아한다. 나의 빛깔과 향기에 퍽 어울리는 이름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려 또 다른 정소담씨에게도 심심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정소담 씨, 어디에선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혹시 이 글 보신다면 꼭 한 번 연락주세요. 같은 정소담끼리 차 한 잔하면 참 좋겠습니다.







(커버사진 : 비록 가슴이 크진 않아도 무척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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