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름은 공과 사
월간지에 글을 기고할 때 가장 까다로운 건 주제 선정이다. 원고를 쓸 당시에 가장 핫한 이슈를 주제로 삼아도, 지면에 인쇄되어 나올 즈음엔 고리짝적 얘기가 되어 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떤 뉴스도 파급력이 채 일주일을 가지 않는 광속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지난달 주제로 썼던 ‘국정농단 사태’는 한 달이 지나도록 온 나라를 쥐어 잡고 있으니, 이번 호에는 많은 뉴스들 중 코너명에 맞는 ‘뒷목 잡게 하는 뉴스’를 굳이 딱 하나만 뽑아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최근에는 그 와중에 오히려 좀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배우 이병헌과 김민희가 청룡영화제에서 각각 남녀주연상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뒷목을 잡게 하는 소식이 아니냐고? 이 글은 바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 썼다.
두 배우의 수상 소식은 인터넷으로 접했는데, 역시 해당 기사에는 그들에 대한 수 천 수만 개의 악플이 달려 있다. 마구 욕을 먹고 있는 그들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포함한 불특정의 네티즌들에게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그러던 중 잠시 이런 못된 생각을 해보게도 되었다. 남의 불륜 소식에 저다지도 분노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매력이 없는 게 아닐까?
사랑은 우리가 아는 것 중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이다. 나의 것이 변할 수도 있고 너의 것이 변할 수도 있다. 짝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진 일.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누군가가 ‘변심’한 일은 정말이지 별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건 오직, 변심한 이가 나의 연인 혹은 배우자일 때에만 별일이 된다. 그럼에도 대중이 타인의 외도 소식에 그토록 분노하는 건, 각자의 무의식에서 ‘감정 이입’이라는 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것이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제쳐놓은 채, 왜 언제나 버림을 당하는 쪽에만 감정이입을 하는 걸까. 스스로 지나치게 매력이 없다고 여기는 탓은 아닌 걸까.
타인의 불륜에 대한 돌팔매질은 정말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나가고 누군가와 백년해로 하는 것이 미담이 될 수는 있다. 대중이 그런 장면을 동경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누가 외도를 하든 이혼을 하든 그건 그냥 타인의 사생활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도덕성, 소위 ‘착한 마음’을 두고 누군가를 잔뜩 칭찬해줄 수는 있지만, 사생활이 '착하지 않다'는 것을 빌미로 공적인 차원에서 불이익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의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간밤에 음식물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고 슬쩍 내다 버렸다는 이유로 당신의 승진이 늦어진다든지, 인터넷에 악플을 달았다는 이유로 월급 감봉을 당한다든지,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잘린다든지 하는 일에 당신은 동의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연예인의 사생활에 필요 이상으로 분노하는 것 역시 그만큼 말이 안 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 왜 불륜을 미화하느냐’며 아니꼽게 본다. 불륜이 아름답다고 말할 생각도, 그것을 정당화할 생각도 없다. 일어나지 않을수록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작태가 싫다.
전혀 축하할 마음이 들지 않는데도 사적으로 챙겨야만 하는 직장상사의 경사(慶事), 부조금에 대한 부담이 연민마저 앗아가고 마는 직장동료의 조사(弔事), 주말에도 울리는 직장동료들과의 단톡방 알림 소리, 사생활에 대한 질문으로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정권 말기마다 반복되는 수많은 권력형 비리 사건들.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국정농단 사태’ 역시 문제의 본질은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놈의 ‘정(情)’ 때문에 잔뜩 곪아버린 대한민국에서, 구성원들이 공과 사의 구분만 명확히 해도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공적인 능력으로만 판단하자. 인성이랄지 매력이랄지 그런 것들은 나와 사적인 관계에 놓인 사람에게서만 찾자.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나와 엮인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필요 이상의 관심은 접어두도록 하자. ‘공’과 ‘사’의 거리는 ‘0’과 ‘4’의 거리보다 훨씬 멀다는 사실을, 우리 2017년에는 부디 잊지 말기로 하자.
이 글은 시사교양잡지 <BAIT> 10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