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금」 지수는 핸드폰 화면에 찍힌 두 글자를 보고 있었다. 지수는 미리 보기 팝업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화면 중앙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라미가 생겼다. 화면은 약 3초 후에 은행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199만 원. 이놈의 회사는 200만 원을 주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4년 동안 월급이 200만 원이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처음 월급 받은 날을 떠올려 봤다. 160에서 199.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안녕하세요.’는 수십 번에서 수백 번이 되었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놀라울 만큼 아주 조금씩 커졌다.
약 5초 후에 핸드폰에서 진동이 한 번 더 울렸다. 「출금」. 이번에는 핸드폰 통신사가 1등으로 그녀의 월급을 빼앗아 갔다. 그다음에는 보험회사, 도시가스, 카드회사, 월세, 대출이자 등등. 회사들이 모래성 게임을 하듯 그녀의 월급을 조금씩 야금야금 가져갔다. 정작 모래성의 주인인 그녀는 단 한 번도 써 보지 못한 모래성을 단 몇 초 만에 반 이상 빼앗겼다. 성실한 회사들 덕분에 또 한숨을 쉰 그녀의 머릿속에 회사 옆 골목길에 있는 카페가 떠올랐다. 사실 그녀는 월급이 들어오는 날마다 그 카페에 갔다. 처음에는 카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갔는데 지금은 월급날의 관습이 되었다. 회사들이 관습적으로 월급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베이지색 간판에 검은색 쉼표 하나「쉼」. 한쪽 벽이 통째로 유리창이었기 때문에 카페 안이 훤히 보였다. 사람은 두 사람 정도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 카페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였다. 항상 조용히, 그 누구의 눈과 마주칠 필요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안녕하세요.” 갈색 앞치마를 두른 사장님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세 번째 이유였다. 그녀가 말하던 문장을 들을 수 있는 것.
그녀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항상 안던 자리,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에스프레소만 마시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가장 싸서. 그녀는 평소처럼 헤드폰을 써서 두 귀를 막았다. 유튜브를 틀고, 카페 ASMR을 틀었다. 은은한 재즈 음악과 낮게 깔린 소음이 고막에 닿았다. 흡입기 따위를 가방에서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가 책을 펴자마자 카페 소리가 끊기고 벨 소리가 들렸다.
“010….”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엄마의 번호를 말해 주었다.
“응.”
-퇴근했냐?-
“지금 퇴근해서 카페에 있어.”
-아, 그 쉰인가 뭔가 그거?-
“쉼이야.”
-그려, 오늘 월급날이제? 욕 봤으니께 푹 쉬어.-
수화기에서 나온 월급날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피부에 박힌 것 같았다. 그녀는 월급을 바로 빼앗겼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면 눈이 뜨거워질 것 같아서 그랬다. 그녀는 가방에 들어 있는 호흡기를 손에 쥐었지만, 입에 가져다 대지는 않았다.
“월급날은 또 어떻게 알았어?”
-우리 딸 월급날도 모를까? 니가 월급날이라면서 처음 밥 사줬던 날, 달력에 적어 두었지.-
“그게 벌써 4년 전인데?”
-4년이든 10년이든. 엄마는 어제 일 같은 거여.-
“그래, 그 말하려고 전화한 거야?”
-월급날인데 또 에스프레소나 찌끄리고 있을까 봐 전화했잖여. 그 쓴 게 뭐 맛있다고 마시냐?-
“몰라, 난 이게 맛있더라. 그래, 늦었는데 엄마도 쉬어.”
-응, 커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들어가라.-
지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손님은 네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각자 핸드폰 하는 사람, 쉴 새 없이 떠드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저마다의 방법으로 쉬고 있었다. 정의된 쉼은 없다. 지수에게는 다른 사람과 마주 보며 떠드는 건 쉬는 게 아닌 것처럼. 누군가에게 기쁜 월급날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녀는 케이블 구석에 각인된 쉼표를 엄지 쓰다듬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나가야지.’
그녀는 갈색 자국이 남은 커피잔을 들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