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착하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착한 민족일 것이다. 한국인은 항상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인사말만 봐도 그런 특성을 알 수 있다. ‘안녕하세요.’우리는 보통 부탁이나 명령을 할 때 '~하세요.’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어 인사말은 안녕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안녕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누군가 그 흐름을 억지로 바꿔서‘안녕할게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미친년 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싸가지가 없다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안녕을 바라지만, 정작 자기의 안녕을 바라면 미친년이 되는 곳. 지수는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에 표시된 파란색 버튼을 클릭했다. 헤드폰에서 통화 연결음이 들리자마자 상대방 남자가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이 32번째다. 근무 시작하고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수는 벌써 얼굴도 모르는 사람 32명에게 안녕을 주입해 주었다. 다짜고짜 욕을 하는 사람에게도 안녕을 빌어 주었다.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안녕을 빌어줄 때마다 자신의 안녕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가는 것만 있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상대방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타고 내려와서 경동맥을 누르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
“아니, 내가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돼? 난 시간이 남아 돌아? 모든 상담원이 그러면 사람을 늘리든가.”
4년 전, 신입일 때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입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욕먹은 짬밥이 쌓인 그녀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상대방이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판단되면 그녀는 고막을 잠가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한다. 통화가 5분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모니터의 타이머를 보며 그녀는 빨간색 버튼에 커서를 올려 두었다. 클릭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상대방의 욕을 끝까지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한 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 상대방이 실장에게 항의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실장은 지수에게 쉴 새 없이 욕을 하며 빨간 커튼을 절대로 누르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통화 종료 버튼은 왜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 문장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드디어 상대방이 먼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주었다. 물론 그녀의 수십 번의 사과가 만든 결과물이었다. 갑자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7분 동안 압축되어 쌓인 긴장이 통화가 끊어진 순간 터진 것이다. 4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헤드셋을 벗어서 책상에 두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말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낡은 핸드백을 열고, 플라스틱 호흡기를 쥐었다. 하지만 입으로 가져가지는 못했다. 대신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똑같은 헤드셋을 끼고 통화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지수보다 자기와 몇 km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안녕을 묻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무관심이 좋았다. 덕분에 봐야 할 눈치가 하나 줄어서.
그녀는 흰 소니 헤드셋을 다시 끼웠다. 주변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2호선 지하철이 역에 들어오는 것조차 아주 작게 들렸다. 노이즈캔슬링 덕분에 필요 없는 소음은 사라졌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던 욕설과 기계적인 인사, 통화 연결음도 캔슬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유튜브에서 발라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제목을 모르는 노래들이 나왔지만,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서 굳이 제목을 확인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그녀를 지나쳐 갔다. 건대입구역에서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탄다. 그래서 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항상성이 유지된다.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서 핸드폰이나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거나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안녕할게요.’ 그녀는 그제야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무도 그녀를 듣고 있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