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잠만 퍼질러잤다간 굶어뒤지것다.”
문틈으로 들어온 엄마의 우렁찬 목소리에 지수의 눈은 꿈틀거렸다. 지수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커튼을 쳐서 햇빛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녀는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나는 분홍색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그녀가 다시 눈을 감으려 했을 때 방문이 활짝 열렸다.
“와~ 우리 집에 송장을 키우고 있었네, 안 인나야?” 엄마가 파리채로 이불을 때리면서 말했다.
“퍼뜩 나와서 밥무라.”
지수는 방문이 닫힌 것을 확인한 뒤, 몸을 굴려서 뱀처럼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녀가 힘없이 방문을 열자, 끓는 찌개 소리와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콧구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그녀의 방 바로 옆에 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검은색 바지와 파란색 블라우스를 입은 상태로 된장찌개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냄비 자국이 갈색으로 나 있는 베이지색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나만 안 보이는 겨?” 지수가 목덜미를 긁으며 말했다.
“또 뭐여?”
“밥이 있어야 묵든가 말든가 허지.”
“퍼뜩퍼뜩 일나라고. 일로 와서 수저나 가져가라.”
지수는 웃으며 터덜터덜 걸어가서 수저통을 열었다. 수납장 안에는 은색 수저가 들어 있는 통이 있었다.
“하나씩만 가져가라.”
“동수랑 엄만?”
“동수는 아까 친구랑 먼저 갔고, 엄만 친구랑 약속 있지.”
그제야 엄마의 피부가 평소보다 밝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지수가 하품을 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동생은 친구랑 나갔고, 엄마도 나간다. 물론 안방에 자는 아빠가 있지만, 아빠는 옆에서 폭죽이 터져도 평온하게 잘 자는 인물이기에 지수는 기뻤다. 오랜만에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2시간만 허락된 자유 시간이었지만.
엄마는 주둥이에 된장찌개가 흘러넘쳐서 말라붙은 꽃무늬 냄비를 들고 와서 턱짓으로 옆에 있던 선반을 가리켰다.
“저거 끄내라.”
지수는 선반에 있던 책 무더기 중에서 가장 위에 있던 잡지를 꺼내서 식탁에 올려 두었다. 잡지의 중앙에는 사진이 있었지만, 냄비 모양으로 갈색 원형 무늬가 생겨서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서 그릇의 반을 채웠다.
“아이고, 요즘에 기아 체험하나? 그것만 먹고 어찌 살라고.”
“다이어트하잖아.”
“다이어트는 무슨? 밤에 공동묘지 가면 사람들 깜짝깜짝 놀라겠다야. 해골바가지 걸어 다니는 줄 알고.”
“엄만 빨리 가기나 혀, 내가 알아서 하니께.”
“보채지 말어, 안 그래도 지금 나가니께. 이따가 학교 알아서 잘 가고.”
“내가 뭐 어제 태어났어? 알아서 잘 가니께 걱정하지 마시고.”
지수는 엄마마저 나간 거실을 바라봤다. 흰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부유하는 먼지 입자가 보였다. 조용했다. 그녀는 방 화장대에 앉아서 거울을 봤다. 목이 늘어나서 쇄골까지 보이는 회색 티셔츠에 하늘을 향해 패기롭게 솟아 있는 머리카락. 립스틱과 나란히 있던 MP3플레이어와 헤드폰을 집어서 식탁으로 갔다.
양파의 <사랑… 그게 뭔데>가 흘러나왔다. 된장찌개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10분 만에 밥을 다 먹은 그녀는 방으로 가서 책상에 앉았다. 책상 아래에 있는 본체 버튼을 누르자,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하지만 헤드폰을 끼고 있는 그녀의 귀에는 소음 대신 양파의 노래만 반복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바탕화면이 나오길 기다리는 5분 동안 마우스 밑에 붙은 회색 구슬을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뜬 수많은 메신저 창을 일일이 끄고 , 인터넷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익숙하게 싸이월드에 접속한 그녀는 로그인을 하지 않았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눈팅을 할 수 있으니까. 검색창에 반 아이들 이름을 쳐서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정현이의 홈」 검은색과 흰색 스킨으로 꾸며진 홈피에서 사진첩을 눌렀다. 역시 노래방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마이크를 잡고 있는 정현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지수는 그 사진에 자기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잠깐 생각해 봤다.
그녀는 화면 구석을 봤다. 작은 윈도우 로고 옆에 나온 시간은 등교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벌써 1시간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황급히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