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가 일이 느는 순간 (1)
나는 초등학생 때 피아노와 발레를 배웠다. 정기적인 수업을 통해서도 실력이 자연스레 늘긴 했겠지만, 주로 실력이 많이 늘었던 때를 돌이켜보면 학급 합창대회 반주를 맡아서 연습했던 때였고, 발레 콩쿠르를 앞두고 주말 반나절을 무용실에서 연습했던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 스트레스는 많이 받긴 하지만 - 이러한 미션들을 도전함으로써 실력이 느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는 스스로 업무 실력이 늘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물론 마케터는 제품 매출, 쿼리수, SNS 팔로워 수와 같은 수치적인 KPI가 실력이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주로 상사)의 피드백도 있지만 내가 온전하게 인정할 수 있는, 스스로의 성장과는 별개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스스로도 인정할 수 있었던 '나 마케터로서 레벨업 했구나!'라고 느꼈던 뿌듯했던 순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 개인적인 일화라 성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프로젝트 담당자가 되는 것 : 오너쉽 (책임감+리더십)
첫 번째는 에이전시에서 프로젝트 담당자가 되었을 때였다. 당시 연차로는 프로젝트의 어시스턴트로의 역할을 하는 정도였어야 하는데 아예 담당자로 업무를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주니어지만 가능성과 열정으로 그런 기회를 얻었다'라고 말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만 말하면 '내부 인원이 부족하니 해야만 했다'.
어쨌건 운명처럼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되면서 일이 버겁기도 하고 (내 월급에 비해) 과분한 업무를 맡게 돼서 종종 분노가 나기도 하였으나, 숨을 곳이 없었다. 행사 디데이는 다가오고 어쨌든 담당자인 내가 스스로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유의 책임감 세포가 초등학생 때 이후 마음속에 쉬고 있던 리더십 세포를 소환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아니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손을 발발 떨면서 첫 글로벌 3일짜리 행사를 치르고 나니, 그 사이 나도 모르게 일하는 프로세스, 관계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일정 조율 등 노하우를 적립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다음 행사를 진행할 때 (이전보다는) 알아서 프로세스 틀을 잡고 프로젝트를 매니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실력이 늘었다는 걸 실감했다. 물론 지금 와 생각해보면 대표님이 직접 리딩하시는 프로젝트였기에 내가 아무리 사고를 친다한들 프로젝트 전반이 흔들릴 정도가 아니었지만, 인하우스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책임과 권한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음에 규모가 크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강하게 크고 나니 다음 프로젝트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그리고 다행히 나는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것에 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차근차근 하나씩 스텝을 밟는 것도 좋지만, 살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큰 일을 맡아서 진행하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에는 두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나중에 나를 지탱해주는 큰 발판이 될 수 있으니 어짜피 해야한다면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