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제주다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담 Nov 28. 2018

7. 이런 인생의 샛길

올해 가장 잘한 일! 제주에서 티(Tea) 마스터 도전기


티 블렌딩 실습 중


인생엔 가끔 샛길이 필요하다


'이런 인생의 샛길'이란 제목이 자칫 비속어같이 들릴 수 있으나, 정말 그 고귀함을 칭찬하는 감탄사다. 20대 중반인 지금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가 쌓고자 하는 커리어와는 무관한, 정말 뜬금없는 배움이 몇 차례 있었다. 어린 시절엔 호랑이 선생님과 미술과외를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고, 10년간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피아노를 치는 것보단 듣는 걸 좋아했다ㅎ)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저학년 때까지 발레를 하면서 무대에 서보았고, 대학교 시절엔 밥 먹을 돈을 아껴 꽃을 배우러 다녔다. 전공인 경영학은 맘 속 깊이 뜨거운 열정을 주었다면 이처럼 나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의 배움은 나를 여유롭게 했고 영감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도 서체를 연구하는 캘리그래피 수업을 우연히 수강했다가 그것이 아이폰 탄생에 밀접한 영향을 주었다는 일화처럼 인생 중간중간의 샛길은 꽤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유독 뜨거웠던 올여름, 나는 제주에서 2주간 제주 원물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티 마스터 교육(응용)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이 운명같이 차를 배운 일은 여름, 아니 올해를 통틀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아마 돌이켜보면 할머니가 되었을 때까지도 그때 참 배우길 잘했어. 할 일이다.



빨간 원피스 입고 열정을 다해 수업에 임하는 중



티(Tea)라는 새로운 세계


차 수업이라 하니 차를 은은하게 우려 마시고 우아하게 이야기 나누며 공부하는 시간이겠거니 했건만, 2주간 6시간씩 매일 진행된 수업은 대학 강의 수준의 수업과 조별 실습, 과제, 오설록 공장 견학, 팀별 시연까지.. 종강 날까지도 정말 알차디 알차게(빡세게) 진행되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과제와 복습을 하다 곯아떨어졌다. 돌이켜보면 정말 대학시절보다 열정을 다해 프로그램에 임했던 것 같다.


교육 프로그램은 조별 실습이 굉장히 많았는데, 운이 좋게도 너무나 좋은 분들과 같은 조에서 만나 수업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엔 커리큘럼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멤버들 간의 케미도 굉장히 중요하다. 케미에 따라 수업에 대한 흥미와 참여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수업은 굉장히 타이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수업이 기대되는 설레는 나날이었다. 운명처럼 한 조로 만나게 된 언니들과 선생님, 그리고 우리의 가족들까지 그 인연이 내겐 크고 행복한 자산이 되었다.



마차 실습 후 시음 (사약 먹는 것 아님)



티를 배우는 이번 교육 프로그램이 만족스러웠던 이유를 분석해보면 '실습'이 메인으로 기반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많은 교육 프로그램의 형태가 강사가 지식을 알려주는 1차원적인 수업에서 수강생의 참여와 실습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굉장히 그 모습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수업은 굉장히 실습이 자연스러우면서 재미를 불러일으켰고, 학습에 도움까지 되었다.


홍차를 배우는 날에는 홍차에 대한 기본 지식과 지역별, 브랜드별 다른 홍차 특성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실습 시간에는 여러 홍차 종류를 그람 수(g), 우리는 시간(분/초) 등의 조건을 같게 하여 표일베로 직접 차를 우리고 테이스팅 하며 그 차이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론에 그치지 않고 직접 오감을 활용하여 차이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진짜' 실습이었다.


이전까지 차는 감성적인 장르로만 생각했었는데, 실습을 하면서 차를 다루는 것이 오히려 과학에 가까웠다는 걸 느꼈다. 직접 스푼으로 저울에 찻잎에 그람수를 재고, 우리는 시간을 다르게 하고 브렌딩을 어떤 비율로 하느냐에 따라 그 맛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니 말이다.



제주의 석양을 닮은 '석양 모히또'


실습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였던 것은 '팀 시연'이라고 할 수 있다. 조별로 티를 개발하고 네이밍, 브랜딩까지 한 뒤 실제 센터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료 시연과 투표까지 이뤄졌다. 우리 조는 제주의 석양을 닮은 '석양 모히또'를 준비하였고 카나페를 핑거 푸드로 준비하여 선보였다. -위 이미지는 제주에서 아주 멋진 카페를 운영 중인 언니 매장에서 우리만의 화보를 촬영했던 사진이다-


우리 조의 티는 녹차 베이스에 히비스커스 시럽을 첨가하여 달콤함과 상큼함을 모두 잡았다. 음료의 맛이 핑거푸드로 준비한 과일을 올린 카나페와 굉장히 조화로웠다. 그래서 맛을 본 사람들의 재방문율이 높았고 무엇보다도 '석양'이란 브랜딩이 차의 비주얼과 딱 맞아떨어져 스토리텔링이 잘 된 덕에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이 메뉴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우연히 롯데칠성몰에서 진행한 <나만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접하게 되어 이 음료를 베이스로 조금의 수정을 거쳐 응모하였고 TOP18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언니의 매장에서도 더 발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론칭되었다.



용기 있는 배움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스물한 살 꽃을 배운 후, 꽃집 혹은 길가에서 마주한 많은 꽃의 정확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핑크색 예쁜 꽃'이 아닌 '라넌큘러스'란 정확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고, 꽃시장에서 꽃을 고를 때 오래 즐기기 위해 덜 핀 꽃을 사고 오아시스와 포장재를 구입하여 집에 데코를 하거나 선물을 해줄 수 있게 되었을 때 난 그때 비로소 꽃을 정말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차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차를 배우면서 카페에서 그동안 무심하게 접했던 녹차, 밀크티, 블렌디드 티 등 많은 차들이 내게 다르게 다가왔다. 이제 차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하면 맛을 달리 낼 수 있는지 그 과정이 머릿속으로 지나간다. 카페에서 예전엔 티백을 컵 안에 넣어 건네주면 쭉 담가 두곤 했지만, 이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감히 티백을 빼어 쓴 맛을 빼며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용기 있게 배움에 임하였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배우는 것을 늘 강조하신 엄마 아빠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용기란 근육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것에 주눅 들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설렘을 느끼고, 배우는 그 과정을 진실로 사랑하는 힘 말이다.


20대엔 배움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큰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것, 지금 배우고 있는 것, 앞으로 배워갈 수많은 것들이 내게 새로운 세상을 선보이리라는 확신이 있다. 혹 만약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기고 행복했으니까 그걸로도 이미 으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인생이 오름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