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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Aug 27. 2020

소선 대악 대선 비정(21)

어려운 시기. 운 좋게 결혼했습니다. 결혼은 새로운 시작점입니다. 물론 결혼이 목표였던 지난날들도 있습니다. 그 날들 곳곳에는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단지 겉으로,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뿐. 계셨다면 어땟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가정은 현실이 되지 못한 만큼 아쉽고, 또 그래서 다소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내가 가장 준비되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잘 채비가 된 그런 때. 부끄럽지 않게 앞에 서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미루어진 것도 있었지요. 결혼에 임박해서야 쫓기듯 선보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서 준비의 가장 마지막의 마무리로 진행되었으면 했습니다. 또 그러면서도 그저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생각으로만 남기고 싶은 게 유독 많았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혼 당일 어떻게 하면 눈물을 잘 참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생전에 저의 결혼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염려했으니 말이지요. 당시 저는 그 고민에 어린 어깃장으로 응수했습니다만, 이렇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지요.


준비를 하면서 늘 부족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어느덧 결혼의 날짜는 다가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행사의 시작인 양가 어머님의 행진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스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연한 아쉬움과 서글픔이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덕담을 하시며 중간에 당신을 거론하셨고 거기서도 저는 어려움을 다시 겪었습니다. 식전영상에서 눈길을 돌리며 어렵게 감정을 추스르는 아버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절을 올릴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혹여나 부족할까 뛰어다니다, 홀로 식사하는 동생을 보면서도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며칠 전 몇몇 외가 식구들의 꿈에서 당신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격 그대로 앞으로 있을 행사를 염려하는 모습이었다는 소식,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늘 의탁하는 유일신에게 간절하고 간절하게, 나는 기억하겠지만 당사자만은 부디 이곳의 염려와 무거운 짐을 놓고 모든 것을 다 잊고서 천국을 누리게 해달라 여러번 기도했는데. 기도가 닿지 않은 것 같아서, 그 기도가 이길 수 없던 모성이 지금도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 전화하는 목소리가 잠기거나 떨리지 않게 버티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동생은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당신께 들러 아버지가 했던 꽃을 당신의 쉼터에 달아 놓았습니다. 저도 늦지 않게 달아 놓으려 합니다.




오늘 친한 지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항암을 거부하시던 지인 어머님께서 병원에 가는 길이 힘에 겨워 다시 되돌아오셨다면서. 평소답지 않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때의 생각이 제법 났습니다. 아직도 후회로 남는, 뜯어고칠 수 없어서 한없이 괴롭고 힘든 과거의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들이요.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이 아쉬움들은 또 언젠가 내 인생의 변곡점에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잘 지내겠습니다. 힘주어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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