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잠이 오지 않는 지금. 문득이라는 사고에 잠의 방향은 더더욱 걷잡을 수 없다. 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이 든다. 많다면 많은 일이 있고, 별거 아니라면 별 일이 없는 그런 일이 있었다. 어쨌든 다들 누구나 겪는 일인 거고, 겪을 일인 거다. 다만 그때는 정해지지 않은 것이고, 알맞은 때라는 것도 절대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오늘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음이 가는 찰나, 내 아이에게 있어서 '할머니'는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 건가 생각을 했다. 최근의 할머니는 무릎 수술을 했다. 평소 아픔을 숨기지 않는 성격 덕분인지 병원을 가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서일까. 적지 않은 나이에도 수술을 결정함에 큰 무리는 없었다.
손자의 도의적 서비스 차원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 시골 병원에 왔다. 병원은 늘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공간.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는 공간. 두 공간의 간극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아주 늦은 저녁. 선잠에 빠졌을 때. 감은 눈으로도 환해지는 빛을 보니 휴대전화 액정이 밝았다. 이 늦은 밤의 연락은 누구인가 생각했다. 그의 연락은 늘 나쁘지 않다. 형제임과 동시에 공간의 간극을 같이 겪었던 전우. 그는 새로운 전투 중이었다.
문득.이라는 사고가 또 잠을 방해했다. 우리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존재의 공백은 참으로 크며, 때로는 몇 사람이 함께 붙어도 힘겨움을 다시금 체감한다. 큰 전투보다는 긴 전투가 더 힘든 법이다. 걱정, 염려라는 적은 끝없이 내려오고 질 줄을 모른다.
그 걱정과 염려라는 것은 유산이라 생각하니, 또 역시나 전투는 고되고 어려운 것이다.
며칠 전. 친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꿈에 나왔노라고. 친지가 전화로 쏟아내는 이야기를 귀에 대고선 내 꿈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이 곳에서의 모든 환난을 두고서 여기의 마음 짐까지 꾸역꾸역 가져갈 필요 없음을 빌었는데. 그게 쓸데없이 야박했던 걸까.
그이도 혹시 걱정과 염려에 함께 맞서는 전우인가. 문득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