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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Sep 17. 2016

사과해

근데 진심은 나에게 있다는 걸 잊지마

자화상


우리나라 사람이 사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이유는 사과하지 않아서이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과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다. 사과를 하지 않는 이유는. 사과를 한다는 것이 본인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과가 나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동시에 책임 소재의 회피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물론 사과의 짐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너무 무거워져서도 안 되는 법이다. 주목할 점은 아무도 그 무거움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며, 그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크나큰 개인의 오점이라 착각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잘못할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은 보기에는 그럴싸하고 이상적인 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급격한 산업화 및 경제 성장을 겪으며, 사과의 성격을 지니는 실패 혹 실수를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결과의 산물로 인식하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과를 하는 사람은 엄청난 약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가 결과의 선에 서있거나, 혹은 그렇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만 있을 뿐. 용서는 없다. 사과를 해야 한다는 판단은 존재하나 용서해야 한다는 판단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용서가 없는 사회에서는 사과를 한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거나. 그래서 소심해지거나. 아니면 사과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과가 서툴기 때문에 자연히 용서도 서툴게 되었다. 때문에 보상이 발달하게 되었고, 사회는 보상을 얻는 정도에 따라서 용서의 범위를 정하게 되었다.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과는 무조건적인 보상까지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강박적 공포로써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자라서 사과받는 쪽이 절대 갑이라는 관념을 낳기도 했다. 때문에 원하는 만큼 보상받지 못하면 되려 주변인에게 한소리를 듣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러나 용서의 무게는 사과의 그것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용서가 있어야 사과도 있기 때문이다. 용서는 거대한 포용이자 이해다. 보상을 줄이려는 사과보다는 이 따스함을 바라는 사과라면 좋다. 어차피 우리야 서로 잘못과 용서를 반복하며 성장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렵게 되었고, 괜찮다는 말 한마디 듣기 더 어려운 세상이다.




p.s // 그래서 삼성의 사과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도. 그리고 많은 이들을 설득시키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과 자체에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보상이 어디까지 이루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삼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사과'하겠지만, 삼성의 사과가 마음에 든다면 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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