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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Sep 20. 2016

음식 집착

먹는 게 남는 시대

여러 언론에서 이미 진단했다. 음식의 시대를 말이다. 실상 못 먹고 못살던 시대와는 다른 성격의 집착을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우리가 여전히 음식에 몰입하게 되었다는 것은 약간의 씁쓸함을 동반한다. 현재와 과거의 굶주림은 다르다만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체감한 트라우마성 굶주림이 현 젊은 세대에도 이어진다는 사실이 씁쓸한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실질적 생존에 연관된 굶주림이었기 때문에 현세대의 굶주림과는 같은 비교 선상에 놓일 수 없다. 고로 씁쓸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세대의 굶주림은 다른 성격을 지닌 생존 방식의 굶주림이다.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는 생존이 과거였다면, 남의눈을 의식하는 생존이 현재의 생존 성격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마을마다 돌려쓰던 옛날과 지금이 아주 많이 다르듯 말이다.


사회의 흐름이나 유행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류 기제가 직간접적으로 담겨있다. 미니스커트와 경기 불황의 관계, 경제 위기와 리메이크성 콘텐츠의 증가. 그리고 이미 서두에 언급한 언론의 진단 역시 그 예라 할 수 있다. 고로 우리 역시 취식 활동이 투영된 사회를 통해서 지금의 사회인들이 품은 생각이나 마음을 은연중에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기본 3요소라 한다. 최우선 순위로 의식주의 순서가 정해졌음은 물론이다. 북한 같은 경우에는 식의주라고 표현하기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은 식의주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도 과거에는 의식주였다. 패스트패션이 주류로 자리잡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을 옷을 구하기 어려웠던 과거와는 다르다. 설빔, 추석빔이 아니면 새 옷을 얻기도 어려운 옛날이 아니다. 지금은 패스트패션의 발자국만 따라가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튀는 사람에게 부정적 시선을 던짐과 동시에 유행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도 어려운 의복 환경. 거대한 매력을 발산하지 않는 이상 눈길을 끌기 어려운 의복 환경은 패완얼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이 패완얼에는 일부나마 의복 생활에 대한 개인적 욕심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박탈감이 담겨있다. 박탈감이 또 어디에 있나? 바로 주거 환경이다. 능력자 부모님이 없다면 어차피 집은 은행이 사줘야 한다.


그렇다. 진짜 문제는 '주.' 집 문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첨언하자면 정상적 혹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집을 얻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는 환경이 점차 통념화되고 있다는 것. 국가적으로도 여러 부동산 정책 등을 통해서 주거문제 해결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값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SNS를 통해서 자신이 뽐내고 싶은 것은 뽐내는 당당함도 짚고 넘어야 한다. 한국인은 그동안 겸손과 겸양이 함께하는 조선사회의 틀을 갑갑해했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자기주장이 또렷해야 하는 세계화 시대의 최신 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사회와 개인의 통념을 줄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때, 거짓말처럼 힙합이 등장했다. 그리고 $WAG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자니.


그러나 지금은 고도화, 선진화 시대. 정말로 멋들어지지 않는 이상. 집이나 옷이나 남 앞에서 뽐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돈 쓰는 효용. 즉 비용을 지불하고 얻는 만족감을 최대로 얻는 종착점이 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르지도 않는 월급, 오르는 물가. 아직 사기도 벅찬 차 그리고 집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은 어렵지만, 효용의 측면에서 이렇게 값싼 만족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생존의 섭취가 아니라 향유의 섭취다. 누리려 일하는데 누릴 곳이 '음식' 밖에 없는 박탈감을 현재 소비세대가 겪고 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은 아니다.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릴 일시성 소비가 안타까운 것 역시 아니다. 그저 박탈의 감정이 담긴 그들, 혹 우리를 위로할 음식이 전보다 점점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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