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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말 Jun 17. 2017

처음으로 성인의 오기를 부렸던 날

대학교 때 일이다. 교내에서는 매년 영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상금이 상당한 편이었고, 수상자에 한해 지역 언론사 지면에 이름이 올라가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대회에 몰리는 시선만큼 준비하려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왔다. 그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회를 진행하도록 추천받은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대회도 대회이거니와, 유학도 가본 적 없는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일이 너무도 신기했다. 솔직하게 기뻤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일이 나에게 이렇게 큰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나의 영어는 교수님들이 인정하지 못했다. 대회 최고 운영 위원 교수님이 진행자가 결정되고 나서 며칠 후 나를 따로 연구실로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구실에서 있었던 통상적 근황 이야기와 알맹이 없는 짧고도 긴 친교의 시간, 나는 온몸에 들러붙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해 집어 삼켜켰다. 


일찍이 나조차 신기하리만치 생각했던 일이기에 큰 설렘에서 치솟는 초조함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정받음의 기쁨과 어느 추상적 성취감을 쉽게 버리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참혹하게도 혹시의 예상은 역시의 현실이 되었다. 마침내 교수님은 내가 예상했던 어려운 표정을 지어가며 이러저런 두루뭉술하고도 장황한 표현과 어른의 사정을 들어 내가 진행을 하지 않을 것이며. 본인이 생각한 더 나은 학생을 염두해 놓고 있다는 말을 했다. 빠른 인정의 참담함을 보일 새도 없이 연구실 밖을 나섰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ㅂㄷㅂㄷ...


처음에 나는 대회의 진행이 대회를 뛰어넘은 어떤 단계라고 인식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받은 충격은 작다고 말할 수 없었다. 충격은 불만이 되었다. 그래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당신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 알려주고만 싶었다. 더 나아가 가만히 있는다면 빠꾸 먹은 이미지 그대로 나를 남겨둘 수도 없었다. 게다가 행사의 틀 바깥으로 밀려나갔음에도 행사에 참석하는 대인의 면모를 보이자는 중2병은 안 비밀^^


그러나 저러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예선을 거쳐야 했다. 문제는 예선 심사위원이 최고 운영 위원 교수. 그리고 처음에 나를 축하해 주었던 많은 학생들은 이제 본인의 대회 진행 빠꾸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고로 대회 진행에서 잘린 사람이 대회에 나간다는 모습이 우습게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한 중2병은 안 비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는 더 잘 준비해야만 했다. 내가 대회를 나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라야 대회 결선까지 바득바득 올라온 모습이 더 흡족했다. 김치코리언 종특인 한恨 정서를 영어로 옮기는 일은 어려웠고, 벽안의 서역인 교수들과 나의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쳤다. 나의 명문이 영어의 졸고로 평가절하 되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많았다만. 참고로 그때가 아마 해외영업 종사자들에 대한 경례, 존경, 경탄, 묵념하게 된 시발점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


10대 최신 용어를 빌어 설명하자면, 빡대가리인 나는 외우는 것을 정말정말 못한다. 다시 10대 최신 용어를 빌어 설명하자면, 킹갓엠페러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 어려웠기에 원고를 오디오로 녹음해서 틈나는 대로 듣고 또 들었다. 참고로 아무도 모르게 준비해야 대회 예선에서 떨어진 것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안 비밀^^


나는 결국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영어 말하기 대회는 결선을 보여주는 대회였다. 나는 무대와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신대륙의 어느 대머리 장사치처럼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싶었으나 청중들 앞에 선 순간 나는 내가 외운 모든 영어 원고를 믿을 수가 없었다.라고 쓰고 잊어버렸다.라고 읽는다. 그래서 나는 허망한 마음으로, 내가 단상에 뒤집어 놓은 원고를 다시 뒤집었다.




이미 어쩌면 내가 가진 암기의 한계 역시 내가 대회 진행하는데 있어서 큰 결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고집을 피우고 피웠다. 더 나아가 나는 우승을 통해서 교수에게 카타르시스적 한 방을 선사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심리적 만족감을 부를만한 결과물은 없었다. 그래도 나름 느낀 점도 많았고, 스스로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서 자축할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자존심으로 대회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많은 배움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받았던 상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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