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그리고 거짓말

by 글짓말

지금 어디에서는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이 시험을 거쳐 범죄의 허락을 받는다.


평범한 삶.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곳으로 가고 정해진 일을 하고 다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향하고, 또 정해진 그곳에서 잠을 자는 그런 활동이 평범함인가 싶다. 아니면 그 평범함은 다수에서 오는 것인지도 생각한다. 과연 그렇다면 다수의 기준은 무엇인지. 다수가 하는 모든 행동이 곧 평범함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곱씹는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세상 모든 것의 정의 내림이란 어려운 일이 되고야 만다. 이 역시 평범함은 아닐지 모른다.


범죄는 범죄다. 범죄가 곧 직업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평범함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 정의를 위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범죄를 위한 정의가 주어졌다. 공의의 질서를 위해 범죄 하는 일. 정의와 범죄의 경계를 끊임없이 오가는 일이었다. 그렇게 선을 경계로 줄타기를 하다 보면 어디가 범죄고 어디가 정의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범죄라는 재능은 오묘하다. 여타 다른 재능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해주거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것이 재능이라 알게 되는 것인데. 그 재능을 펼치고 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 세상사의 가르침이고, 또 그래서 그것을 믿고서 살다가 어느 순간 본인의 재능을 제한 없이 풀어놓는 순간의 당황함 또한 오묘한 것이다. 범죄이기에 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그 사회적 약속을 한꺼번에 뒤로 밀쳐놓고는 범죄를 해도 무방하다는 그 이상한 명령. 그리고 그것에 뒤따르는 오묘한 통제들이 그랬다.


일상이 범죄인 이들에게 일이 끊기는 것은 새로운 고통이다. 전혀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세계. 그 세계의 관성이 너무도 어색해서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관성을 거스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미디어들이 그들을 묘사할 때, 특히 일이 없는 그들을 묘사하는 꼴을 볼 때 불쾌했다. 겉모습은 안중에도 없이 폐인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낭비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그저 다시 걸음마를 하는 모습이 우습다면 우스울 일이지만 폐인의 모습이 걸음마의 대명사인양 묘사하는 것이 너무도 불쾌했다. 토사구팽이라고 했던가. 사냥이 끝나면 개는 삶긴다고 했다. 괴물과 맞서기 위해 괴물을 키운 곳에서는 괴물이 쓸모가 없어지면 괴물 낙인을 찍고선 방치한다. 괴물이 스스로 파괴될 때까지 말이다.


그러나 괴물은 가만히 두어도 사멸한다. 실패한 범죄는 범죄로 다스려지고, 그 과정 속에서 갈려나갔던 다른 괴물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범죄가 괜찮다던 집단에게서 부인되는 과정을 겪고, 끊임없이 의심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연극하며 살아갔던 나날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는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다 같이 공의를 위한다고 외치지만 그 외침마저 숨겨야 한다.


많은 날이 지나고 지난 먼 미래의 어느 순간. 그 언젠가 아직 파괴되지 못한 괴물들은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사람의 사회에서 스스로가 괴물임을 자각하는 순간보다는, 이젠 제법 익숙해졌음을 깨닫는 그 순간이 더 많아질 때가 바로 그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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