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법

by 글짓말

더운 여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걷다 보니 상의가 거의 젖어있었다. 내 가슴을 적신 여름. 정류장에서 마신 버스 매연은 해로워서 싫은 게 아니라 더워서 싫었다. 뜨거운 바람이 섞인 버스 매연을 몇 번 마신 후에야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예상처럼 버스는 시원했고 타는 순간부터 내리기 싫어졌다. 시원한 에어컨이 온몸을 휘감으며 서둘러 날 반겼다. 온몸을 핥는 냉기의 쾌감이 너무도 짜릿했다. 에어컨은 이내 내 살과 젖은 옷을 보송보송하게 말려주었다.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보통의 한국 남자 대부분은 군대라는 곳에서 에어컨 없는 여름을 맞게 된다. 나도 운 없는 다른 사내들처럼 에어컨과는 거리가 멀었던 군 생활을 했다. 특별히 군대는 여름엔 원시에 가까운 훈련. 유격훈련이 있다. 선풍기도 없는 훈련. 거기에 식수는 위생 및 소독을 위해 끓인 물. 격한 움직임으로 달아오른 몸과 뜨거운 식수의 조화는 전혀 새로운 고통이다.


다행히도 훈련 일정은 짧았다. 더군다나 비까지 쏟아지는 덕분에 덥지 않고 시원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지라 운동장에서 흙 묻히며 땀 빼고 눈물 빼고 힘 뺄 필요가 없었다. 부대원들은 24인용 텐트에서 교육을 실시한다는 말에 운동장에서 흘릴 눈물을 감격의 여파로 흘렸다. 왜냐하면 군부대에서의 실내교육은 곧 취침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잠이 왜 중요한 이유? 휴가와 잠은 국방부 시계를 가장 빨리 돌린다.


얼마나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팔꿈치의 격한 찌름이 날 깨웠다. 교육은 매듭법이었고 너무 대놓고 자버린 나는 교관에게 지적을 당하고야 만 것이다. 교관은 단상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아는 매듭법이 있다면 여기서 한 번 보여주라고 했다. 그는 내가 만약 어떠한 매듭법을 모른다면 여기에 있는 전 부대원이 받을 다음 훈련이 얼마나 혹독할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단상에 서서 전우들의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군인의 살기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새삼 느꼈다. 내가 매듭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매듭법은 단 하나였고, 하나밖에 없었지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 않고 나서의 뒷감당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매듭은 하든 안 하든 나의 목숨과 연관되어 있었다. 이 얄궂음..


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매듭인 교수형 매듭을 휘리릭 뿅 지었다. 곧이어 내 눈엔 입을 떡하니 벌리고 아연실색한 맨 앞 줄의 부대장, 중대장, 소대장, 부소대장 그리고 교관의 창백한 얼굴이.. 참고로 난 부대 내 관심병사 선도와 보호를 위해 일하는 상담병이자 군종병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부대원들이 받았던 쇼크의 강도는 보통 이상을 웃돌았다.


짧았지만 길었던 정적이 흐르고 나서. 나는 약속대로 내가 졸던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하하하하하 웃었고. 그 웃음을 선택한 것은 인생의 실수였다. 허나 거짓말처럼 기적적으로 그 날 이후로 나에게 교수형 매듭에 관한 얼차려나 기타 간부 상담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훈련이 끝나고 나서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담병에게 주어지는 포상휴가가 잘려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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