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 보내준 연세대학교

시기와 질투의 아름다움

by 담낭이

내 학창 시절은, 열등감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는 곧잘 수학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한 번도 나는 수학을 잘하는 친구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왜냐면 늘 내 주변에는 나보다 상상 이상으로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병찬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영재 같은 친구였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인지, 내가 수학을 잘한다는 생각이 없어서인지,

그게 나에게 있어 크게 질투나 열등감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은데,

커서 생각해 보니, 그게 내 인생 첫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그럭저럭 공부를 하는 친구였지만, 딱히 우수한 점수의 학생은 아니었다.

500점 만점이던 그 시절, 고3 때 내 수능 성적은 정확히 380점대였다.

인 서울을 겨우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의 성적이었고, 그렇게 나는 2006년 재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07학번으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 아마 나는 재수기간

가장 점수가 많이 오른 케이스에 속했을 것이다.


운도 좋았을 거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실 그 누구에게도 (부끄러워서) 말한 적 없는,

내가 재수기간 그토록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한 여자아이 때문이었다.(라고 굳게 믿고 있다.)


초중고 내내 숙맥으로 여자애들한테 말 한번 못 붙여봤던 나는,

재수 학원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고, 그 친구에게 고백이라는 것도 해봤지만,

뭐, 당연히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나랑 같이 친하게 지내던 다른 남자아이와 사귄다는 것이 아닌가!?

더 열받는 건 그 둘 다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인생의 찌질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고, 사실 나이 다 먹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고부터 정말 그렇게 집중해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일같이 학원 후 독서실, 그날의 다짐을 써가며, 때로는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원망도 해가면서..

그리고 그 덕분인지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바라던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그때의 감정이 크게 기억나진 않는다.

분노였을까? 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혹은 그저 공부가 감정 풀이의 대상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름이나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그들에게, 그때의 나는 왜 그리도 '열폭'했던 걸까.


그런데, 그 열등감이 이상하게도 그때 당시 나에게는 좌절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앞에서 무기력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열등감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 마음을 받아준 그 여자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그 여자아이와 사귀게 된 남자아이의 잘못도 아니다.

그 친구의 마음에 들지 못한 찌질했던 내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좋아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던 그 시절 어렸던 나로서는,

그들 보다 더 좋은 대학, 과에 진학해서, 보란듯이 나는 해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 뿐이다.


그냥 평범했던 그 과정이,

오히려 한없이 찌질하고 평범했던 내가,

인생에서 무언가 나 스스로 가진 열등감을 성취감으로 얻어냈다는 경험을 했던

의미 있는 첫 사례였던 것 같다.


열등감은, 성취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아름답고 지질한 동기부여의 감정이구나.

나이가 든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 열등감에 의한 폭발적인 동기부여도 이제는 참 쉽지가 않다.

그래서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을 바꾼 경험이기도 했다.


쿨한 척 한번 말해보자면, 나이 다 먹은 지금에는, 그때 그 친구들이 고맙다.

각자,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지? 물론 나는 너무나도 잘 살고 있단다.

찌질했던 나에게, 그런 동기부여를 심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뀐 것 같아.


(참고로 그 여자애는 연세대학교 나보다 낮은 과에 진학, 남자애는 삼수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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