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가장 내가 사랑했던 영화, 소셜네트워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소셜네트워크는,
2010년 개봉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Facebook의 창립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나는 창업을 하고 있어서 더 영화에 몰입했을 수도 있지만,
내게 그 영화가 가장 재미있던 부분은,
영화 속 주인공인 마크 주커버그가 보여주는 극한의 찌질한 열등감이었다.
작 중 주인공은 전 여자친구에게 차이고, 이를 복수하기 위한 일종의
'여성 비교 사이트' 같은 것을 만들었다가,
결국에는 이를 확장하여 페이스북을 만들고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상에서, 커다란 성공 이후에도 그는,
전 여자친구의 페이스북 페이지만 한참을 refresh 하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나는 영화 속 주커버그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다소 영화적 설정 때문에 '극도로' 찌질하고 해서는 안 되는 언행들도 나오긴 했지만,
그냥 그 모습 자체가 솔직한, 그러나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단편을 보는 것 같았다.
'네가 감히 나를 차? 나는 보란 듯이 성공해서 네 앞에 이 명함을 보여줄 거야'
열등감이라는 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있을 필요도, 몰입할 필요도 없다.
영화 속 그에게 '열등감'은, 수십 조 가치의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 장치가 되었던 것처럼
그냥 단순히 그렇게 나에게 긍정적으로 소비되면 끝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의 솔직한 열등감을 마주했을 때, '인간적이다'라는 표현을 쓰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기저에서 동의하는, '나도 그래'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솔직한 모습이 미친 듯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생각해 보라.
전 세계 10억 이상이 쓰는 SNS platform의 시작이,
내가 좋아했던 한 여성에게 차여서 만들어졌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또 다른 측면에서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영화를 리뷰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작 중 마크 주커버그를 "사회 부적응자" 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내가 봐도 그렇다. 대체 왜 그럴까?
마지막 영화 장면에서 그의 변호사가 그에게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안타까운 건 나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네요"
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영화 내에서 쉴 새 없이 그의 열등감을 밖으로 표출해 낸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열등감을 주체하지 못할 때,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외부로 흘려보낸다.
우리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침은, 입 안에 있을 때 가장 인간에게 이로운 효소이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가장 더러운 그것이다.
라는 말처럼,
우리의 순수하고,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찌질한 열등감은 우리 안에서만 잘 자라나고 있으면 된다.
열등감은 하나의 단편적인 감정이 아니라,
앞서 여러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 자신의 우월감, 자기 합리화와 같은 내 여러 감정들과 함께 결부되어 있다.
나는 내 스스로의 열등감은 우월감과 동일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자기합리화를 만났을 때 가장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내 열등감은 결국 오롯이 내가 다스리는 감정이다.
누군가가 수 백번 너의 열등감은 괜찮아, 누구나 다 그래,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해준다 한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말은 그 자체로 의미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결국, 내 자신은, 내 열등감을 스스로 합리화 해서 타당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마크 주커버그 처럼 실질적인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든,
나만이 아는 작은 성과가 되었든,
아니면 놀랍게도 그 어떤 누가 보더라도 비루한 결과나 과정으로 전락했든 간에,
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감정이어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어렵고, 한편으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무한히 열등감을 느꼈다가도, 그것을 통해 성취해 내고, 또 내 스스로의 우월감을 가지고,
때로는 내 스스로 합리화한 기준에 내 열등감을 완화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성장한다.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