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이 자기 발전으로 가기 위한 조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자기 성취감

by 담낭이

대학원 연구실 시절,

후배들과 술을 마시다가 얼큰하게 술이 취한 그 시점에,

나는 따로 한 후배를 불러 고백했다.


"너는 논문도 참 잘 쓰고, 머리도 영특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도 참 잘하는 것 같아."

"나는 네가 참 부럽다."

"네가 가끔 밥 맛없게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거만 빼고"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인 장난 섞인 이야기였지만,

내 고백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나보다 족히 6살은 어린 친구가, 나보다 논문 실적도 많고, 사람들 간의 관계도 좋고,

가끔은 내가 소심해서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그 친구들은 서슴지 않고 자신감 있게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내 열등감을 그에게 고백했다.


가끔은 난 이런 내 솔직한 마음을 그 대상과 함께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면 내가 그에게 가진 열등감은, 그가 알게 되는 순간 하나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야.

그뿐이야.


이 고백 이후로 나는 정말 많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 친구에게 이렇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열등감을 고백하던 시점에, 나도, 그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이상의 논문 실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던 것 아닐까?


나는,

그만큼 나도 나 스스로가 부족함 없이, 꿀림 없이 잘해오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 열등감을 내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 그리고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야.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래도 이만큼 해왔어, 혹은 이렇게 해낼 수 있어.


이 과정이 명확해지는 순간, 열등감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아름다운 동기부여의 자세가 된다.


지난번 찌질했던 내 재수시절의 글에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나, 그 사이의 연정에 관한 감정은.. 아쉽게도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얻을 수 없는 그 감정에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지만, 내가 그들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거야.

나는 그래도 수학을 어느 정도 하고, 너희보다 지금은 당장 성적이 좋지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보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에 가고 말 거야.


그 아득했던 재수 시절에, 나에게 대충 이런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물론 현실은 여기서 다 말하지 못할 만큼 더 못나고 찌질한 감정 소모의 순간 들이었겠지만 말이다.


때론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하는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하곤 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과도한 피로감을 준다면, 오히려 반대로 아주 작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성취를 해나가 보면 어떨까.


작은 성취가 큰 성취가 되고, 그 큰 성취감이 나의 바탕이 되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단단해진 나에게, 그 찌질하고 바보 같던 열등감은, 나를 더 크게 키워줄 이유에 지나지 않게 된다.


라고,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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