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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Feb 04. 2023

왜 그리들 늦는 거야, 내가 만만해?

만만해 보이는 놈은 만만한 취급을 받는다

미국 회사로 이직하고 6개월간 일하면서, 가장 놀랍고 적응하지 못했던 상황은

"진짜 내 말을 안 들어 처먹는다!!!"

였다.


적어도 삼성에서 일할 때는, 이 정도까지 수모를 겪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말 이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쨌든

내가 선택한 곳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1. WTF S******


보통 우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EDA Vendor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업체는

S사와 M사가 있다. (M사는 최근 다른 S사로 통합, 편하게 M사로 통일)


삼성에서 일할 때 그 두 회사에서 받은 느낌은 이랬다.

S사 : 정말 열심히 잘 지원해 줌. 그런데 늘 뭔가 하나씩 모자람. 그래도 지속적 피드백을 통해 요구를 들어줌

M사 : 정말 해달라는 것 잘 지원해 줌. 왜 필요한지 계속 설득해야 함. 본인들이 슈퍼 을이라 생각함. 그래도 한번 해오면 완벽하게 해옴


삼성에서 나는 주로 S사와 일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요청하면 꽤나 iteration이 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고,

요청할 때, 최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요청해야 그들이 이해하고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mindset만 가지고 이곳 퀄컴에서 다시 S사와 일하게 되었는데,

이전에 삼성에서 일할 때와 약간 분야가 다른 곳의 사람들이어서 조금은 work style이 다르려니 했는데,

정말 이 정도로 소통이 안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1-1 메일을 보내도 절대 답장을 안 함. 적어도 "응 너 메일 확인했고, 곧 알아볼게 고마워!" 정도의 비즈니스 에티켓은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런 것 없음. 한 번은 너무 화나서 메일에 읽으면 답장을 꼭 해줘,라는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에도 답장을 안 함. 미팅 때, 너 내 메일 봤니? 하고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이 "NO"라고 하길래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조차 까먹음


1-2 적어도 엔지니어 업무에서 ECD(예상 완료일)는 기본적인 매너인데, ECD 요청에 절대 답을 안 줌. 메일도 답을 안 하는데 이걸 답 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진행되다 결국 1Q동안 해당 프로젝트는 아무런 진행상황 없이 끝나게 됨


이런 현상에 대해 내 매니저와도 얘기했고,

결국 이번 상위레벨급 회의에 이 부분이 escalate 되어 올라가기로 했는데,

아직도 개선될 상황이 보이지 않아 답답함만 느끼고 있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


2.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Vendor 사 뿐 아니라 우리는 다른 팀에게도 이런저런 요청사항을 요구해서 받아내야 한다.

특정 package 파일에 대해 새로운 요청사항이 있어 그들에게 전자문서 형식으로 due date을 1/31로 설정하고 요청했고, 당연히 이에 대한 메일이 전송되었고, 그에 대해 어떤 협의 요청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1/31까지 완료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31이 돼서 그들에게 진행상황을 확인했다.

나: 혹시 이 건에 대해 오늘이 due date인데 얼마나 진행했어?

그: 우리 아직 시작 안 했는데


????


너무나 뻔뻔한 그의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자기는 관련 일이 너무 많이 와서 볼 시간이 없었다, 새롭게 due date을 정하자"라고 얘기했고

결국 이 일의 due date은 그들의 마음대로 3월 중순으로 미뤄졌다.

원래 이 일을 2월 말까지 마무리하려 했던 나는, 결국 스케줄을 재조정해야만 했다.




이것은 그들이 안 했으니까, 그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들이 안 할 때까지 방치한 나의 관리 부족인가?


내가 그냥 학생이었다면, 그들의 잘못을 어필하고 마지막 발표자료에 그들의 이름만 지우면 끝났겠지만..


그러나 여기 회사에서, 윗분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지, 일이 되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고, 그것을 하지 못했으면 결국에는 나의 잘못이다.


그들이 메일을 답하지 않고, 요청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이 그것을 계속하는지 안 하는지 집요하게 물어보고 일정을 체크하고 압박해야 했었다.

나는 그걸 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번의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것 같다. 지랄하지 않으면 그냥 호구로 본다.

치열하고, 공손하게, 예의를 지키며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개지랄을 떨어줘야 나는 내 입지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온실에서 정글로 나오고 나서 느끼는 첫 깨달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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