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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낭이 Aug 09. 2023

이곳 미국은 실력이 곧 직급이다

낮은 직급 엔지니어에게 혼나면서 배웁니다 

정신없는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나의 직무의 절반 이상이 SRAM Diagnostic에서 Yield 업무로 전환되었으며

그 말인즉슨, 

내가 하나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서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Yield 업무는 내가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배우고 싶었던 분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고 있다.


다만,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에게 물어봐가며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너무 어렵고 힘들 뿐이다.




T사의 수율 쪽을 맡고 계신 principal eng 분께서, 

나에게 한 인도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나보다 직급은 낮지만, 이미 몇 년 동안 수율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훨씬 일을 잘하는 친구였다.

나 역시 일을 배울 수 있는 루트 하나하나가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에

틈만 나면 이 친구에게 연락하여 meeting을 잡고 물어보며 일을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친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본인이 생각한 수준 보다 내가 더 못 미쳐서인지,

본인의 말을 내가 바로바로 이해를 못 하는 게 답답해서 인지, (사실 인도발음 알아듣기가 아직도 너무 힘들다)

이따금씩 나를 질책하는 질책성 말들을 던지곤 한다.


처음엔 그래도 가르쳐 주는 그가 고마워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하지 못했고, 

미팅 후에 그가 떠나간 미팅 룸에서 혼자 남아 30분간 멍하니 앉아 그의 말을 곱씹었던 걸 보니

유난히도 그 말이 조금 아프게 찔렸나 보다. 




아마 그 친구는 나보다 5~7살 정도 어린 친구일 것이다.

미국 학부와 석사 후 퀄컴에서 4년 정도 이 업무를 하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문득, 

한국이었어도 5살 정도 어린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심하게 대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는 이내 정신 차렸다.


그래 여기는 미국이지.

실력도 없으면서 나이 생각부터 먼저 하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이곳은 미국이고, 직급이 존재하지만 직급보다 우선 되는 게 실력과 실적이라는 걸.

아무리 그의 태도가 고까워도 나는 그에게 내일 또 웃으며 먼저 연락할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 때까지 그는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한 번 미국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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