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차 말하기 어려웠던 그날,4.3
.
.
.
“제주4.3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가 4.3을 잊는 것이다.”
나는 제주4.3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교과서엔 짧은 문장 하나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 수업 시간에 다룬 기억은 없고,
어렴풋한 단어만 내 머릿속에 스쳐갔을 뿐이다.
최근,우연히 보게 된 제주 4.3에 대한 다큐는 내 마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고,
영상을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이 참혹한 진실을
무엇으로 감추려 했던 걸까.
왜 우리는 이토록 오랫동안
이 고통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다큐를 본 뒤,
나는 며칠 동안 제주 4.3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4.3이라는 숫자를 통해 찾아가는 참혹한 이야기들...
기록 속 그들의 침묵과 트라우마를 마주할수록
내 마음엔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쌓였다.
이 글은 정보나 통계,역사의 요약이 아니다.
나는 단지,
이 4.3이라는 역사의 기록 앞에서 느낀 나의 온 감정을 남기고 싶다.
제주 4.3을 그저 사건이란 이름으로,
과거의 일로,
나와는 관계없는 무언가로만 여겨왔던 시간들을 참회하며...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시는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함께 담아 쓰려고 한다.
1948년 4월 3일,
제주에서 시작된 4.3은 단순한 폭동도,좌익 반란도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그리고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을 상대로 자행한 국가적 집단 학살이었다.
그들에게는 아이도,노인도,여성도 예외 없었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는 추측만으로
임신한 아내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대검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산에 올라간 이유만으로
불을 지른 적도 없는 마을 전체가
빨갱이로 낙인찍혔고,
그 낙인은 곧 죽음의 선고장이 되었다.
도망치게끔 괴롭혀 놓고,도망쳤다고 죽였다.
애초에 도민들을 죽이기 위한 목적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단순한 전쟁도 아니고,반란도 아니다.
그저 국가의 이름을 가장한,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의 집단이 저지른 학살이었다.
우리가 4.3을 단지 사건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
그 누구도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침묵의 정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잔혹함은 이념도,명분도,체제도 아닌 악의 본질,그 자체였으니깐.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가 학살당했다.
신고된 희생자만 약 14,000명.
하지만 실제 수는 30,000명에 이를 거라고 한다.
그들이 죽은 것도 비극이지만
더 큰 비극은,살아남은 사람들이 침묵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입을 열면,또 죽을까 봐.
아이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묻어두고,지워야 했던 기억들.
지금까지도 당시 트라우마에 고통받는 제주도민들이 많다고 한다.
제주도민들은 오랜 세월 지난 지금도
4.3에 대해 입을 다문다.
“우리가 이 일을 말하면 또 죽는다.”
“명단에 이름 올리면 또 당할지도 몰라.”
“자식들 미래를 위해 입 닫고 살아야 한다.”
이 말들은 단지 공포가 아니다.
국가폭력이 만들어낸 집단적 트라우마이자,
대한민국 역사에 새겨진 침묵의 나선이다.
그 고통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유족들은 여전히 국가에 의해 지워졌던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역사 4.3...
3.1운동,5.18민주화운동,6월항쟁처럼
대한민국 현대사의 다른 저항들은
‘운동’과 ‘항쟁’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4.3은 끝내 어떤 이름도 완전히 얻지 못했다.
운동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 민간인이 죽었고,
학살이라 하기엔 국가가 책임지지 않았고,
항쟁이라 하기엔 빨갱이라는 낙인이 두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4.3이라고만 불렀다.
이름조차 감히 붙일 수 없는 상처.
그만큼 이 사건은 잔혹했고,
복잡했고,무겁고,지워졌고,
지금도 침묵하고 있다.
기억은 곧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다.
4.3 이후,
누군가는 잔혹한 집단 학살에 가담한 대가로 살았고,출세했고,
훗날 대한민국의 주요 한 자리씩 맡게 되었다.
그 반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죽은 제주도민들은
역사의 그늘 속에서
단지 사건의 숫자로만 남았다.
이제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차례다.
역사의 침묵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기억하고,말하고,기록하는 것이다.
제주4.3은 단지 지역의 아픔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밟고 지나온 피의 기록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잊었다"고 말할 수 없다.
기억하지 않으면,
그날은 다시 반복된다.
국가폭력도,침묵도,낙인도 다시 살아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해주는 것,이야기해주는 것,
잊지 않는 것이다.
영원히 잊히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역사,
4.3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날 죽은 이들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들이 살아 있었던 시간은
우리가 대신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시대니까.
이제는 말해야 하는 시대니까.
그들의 고통이,그들의 침묵이
우리의 언어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가 자꾸 말해야 한다.
승리한 역사만 기억하는 건
역사에 대한 배신이다.
승리한 역사를 위한
피 흘린 아픈 역사들도 있었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아파한 자들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주4·3은 민주주의의 그늘이 아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말이나 제도로 시작되지 않는다.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기억할 때,
비로소 진실은 억압에서 벗어나고,
침묵은 말이 되며,
죽임당한 이름들은 역사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어느 역사에도
피를 흘리지 않고 세운 민주주의는 없었다.
그 피를 모른 채 누리는 자유는
결코 진짜 자유가 아니다.
.
.
2003년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55년 만에 최초로 국가원수로서 사과하고,
2005년에는 국가 차원에서
최초로 제주 4.3에 대한 공식 사과를 했다.
2006년 4월 3일 '제주 4.3' 58주기 위령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거사 정리 약속을 포함한
추도사를 하여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였다.
위령제 당시 '제주 4.3 '유족 대표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이후,제주 4.3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의 제주 4.3 국가기념일 지정은
4.3을 더이상 이념대립의 도구로 삼지 말자는 정치적 선언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제주 4.3은 국가가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국민들도 기억하지 못했을거다.
국가기념일은 단지 날짜가 아니라
참회의 시작이자,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나처럼 제주 4.3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4.3을 통해 기억하고,
그 무지를 참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을.
그날을.
4.3을...
.
.
.
#제주4.3 #4.3 #제주도민학살
#집단학살 #잊지말아야할역사 #우리의역사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