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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지금의 청년은 언젠가 노인이 되고,
지금의 노인은 한때 청년이었다.
모두가 그 단순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향해
“젊을 때 뭐 했길래 저렇게 살까”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그 말 속에는
어리석을 만큼 편협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인생은 노력만으로 완성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과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믿음.
어쩌면 그 무지한 믿음은
현실의 복잡함을 지워버린 채 굳어버린
어리석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생은 노력만으로 완전히 설계되지 않는다.
질병이 끼어들고, 가족사가 발목을 잡고,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가 삶을 무너뜨린다.
누군가는 가족의 병간호로 청춘을 보냈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공장으로 향했다.
어떤 이는 IMF라는 시대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고,
어떤 이는 준비할 틈도 없이 가장이 되었다.
젊음은 생각보다 짧다.
모든 것을 이루기엔 부족하고,
모든 실패를 만회하기엔 더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누구는 부모의 지원을 받았고,
누구는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를 먼저 배웠다.
이 차이를 단순히 노력의 차이로만 재단하는 것은
인생을 지나치게 평면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현재 우리는 오래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구조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제도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노년의 가난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사회 구조의 문제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노년의 어려움을
젊은 시절의 게으름으로만 돌리는 시선은
어쩌면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을
한 개인의 과거 속으로 밀어 넣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순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잊고 사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말 한마디가
결국 미래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노인을 향한 시선은
곧 우리가 맞이하게 될 시간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게 됐다.
영화 속 어르신들은
그저 각자의 오늘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일을 한다.
젊은 시절의 무책임으로 자식에게 외면당하기도 하고,
사고로 딸과 사위를 잃은 뒤 남은 손주에게마저
주머니를 털리는 삶을 살아간다.
더는 버틸 힘조차 남지 않아
일부러 굶어 죽음을 맞이하는 지점까지 내몰리기도 한다.
영화는 세 명의 노인을 통해
노년의 삶이 특별한 비극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존재해 온 현실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 한켠이 묵직했고,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단순한 안타까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욱 장기화되어 굳어져 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누군가의 오늘은
그들의 긴 세월 속 한 단락일 뿐이다.
그 한 장면만을 들춰내 그의 모든 삶을 평가하기 전에
우리가 함께 맞이할 고령화 사회의 내일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일.
어쩌면 그 생각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태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 최소한의 태도는
결국 미래의 우리 자신을 향한
가장 현실적인 준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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