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파괴하는 평범한 일상




전쟁의 반대편에는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있다.


전쟁은 추상적인 평화를 무너뜨린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이 실제로 파괴하는 것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아침 8시에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고,
어제도 다녀왔던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등굣길이며,
늘 다니던 회사로 향하던 출근길이다.

가족이 모여 앉은 식탁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교문을 향해 걷던 아이들의 발걸음을
총알이 가로막는다.

주말마다 다니던 시장으로 향하던 길,
신호를 기다리며 길을 건너던 순간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조금 전까지 숨 쉬고 걷던 사람이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다.

가족과 아침 식사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어른들은 일터로 향하는 것.

누군가는 그것을 추상적인 평화라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반복해 온
아주 평범한 하루다.



전쟁은 바로 그 하루를 산산이 부숴버린다.

그래서 추상적인 “평화를 지킨다”는 말보다
현실적인 “보통의 일상을 지킨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전쟁도
추상적인 평화와 현실적인 일상
결코 지켜주지 못한다.



결국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는다.


한 번 시작된 폭력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폐허 위에서 자란 분노는 다음 세대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또 다른 증오가 된다.


그래서 전쟁은 총성과 폭탄이 멈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 속에서
전쟁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승리도, 영광도 아니다.


상처와 기억,
그리고 다시 반복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전쟁이다.



전쟁의 이유는

시대마다 바뀌는 지도자들에 의해 다르게 설명된다.


국경, 이념, 자원, 정치.


수많은 명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명분들 속에서 전쟁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은 결국 사람이 시작하고
사람의 감정으로 유지된다.

두려움, 분노, 탐욕, 우월감.

그 감정들이 계산서로 정리되는 순간
전쟁은 시작된다.



전쟁의 서막이 오를 때
지도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평화를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를 흘려서야 얻어지는 평화가
어디에 있던가.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은
추상적인 평화를 팔아 명예를 얻고 이익을 챙기는
늙은 권력들의 난동일 뿐이다.



위의 이미지에 담긴 의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과 분노가 뒤엉킨 참으로 잔인한 장면이다.


전쟁의 시작과 끝이 같은 공간에서 내려다보인다.


위에서는
국가의 부름에 따라
온전한 몸으로 전쟁에 나가는 젊은 이들이 있다.


아래에서는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상처만을 안은 채 돌아온다.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전쟁은

누군가에게는 명예로운 훈장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의 흔적이 된다.


전쟁의 끝에는 영웅도, 승리도 없다.


오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잔인한 대가만 남는다.


전쟁은 늙은 지도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젊은이들의 삶과 꿈을 담보로 삼는 방식이다.

전쟁은 인간의 감정을 지워버린 계산서이며,
그 계산이 끝날 때까지
수많은 평범한 하루가 파괴되어 사라진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추상적인 평화가 아니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던 사람들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그 하루.


폭탄이 떨어지기 몇 초 전까지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던 바로 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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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월 28일, 이란 여자초등학교 폭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의 사진 /출처 : 이란 테레한 타임스


희생된 아이들과 모든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Rest in peace.


그 말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곳에서는 부디
평범한 오늘을 살기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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