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은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다

왜 우리는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이동 시스템을 설계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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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장애인 복지 공약이 쏟아진다.

이동권 확대, 일자리 지원, 자립생활 보장 같은 말들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그 수많은 약속들 가운데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제대로 시행된 것은 과연 몇 건이나 될까.

정책은 종종 시행착오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새로운 제도이니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는다.

물론 어떤 정책이든 시행 과정에서 오류와 수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말이 너무 쉽게 사용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누군가의 삶은 행정의 연습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를 보면 그 현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애인 콜택시를 한 번 이용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반복된다.

대기 시간은 길고 차량은 부족하며 지역마다 상황은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행정에서는 늘 “개선 중”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이동은 특별한 편의가 아니다.

병원에 가고, 직장에 출근하고, 가족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는 일.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범한 일상이다.

그래서 이동은 서비스가 아니라 권리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된 이유 역시 단순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반 대중교통이 장애인의 이동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던 현실 때문이었다.

버스와 택시에서 장애인의 탑승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일이 반복되었고, 승하차 과정에서의 안전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휠체어 이용자는 계단형 버스를 이용하기 어렵고, 지하철역의 접근성 역시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장애인 콜택시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기존 교통 시스템이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했던 현실 속에서 등장한 최소한의 이동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장애인의 이동권은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다.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현장에서 제대로 숙지되지 않거나 행정적으로 좁게 해석되는 경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권리로 보장되어야 할 이동이 여전히 ‘이용 가능 여부’를 심사받아야 하는 일이 되는 순간, 그 권리는 완전한 권리가 되지 못한다.


실제로 장애인 콜택시 이용에도 등급 제한이 존재한다.


같은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보행상 장애가 심한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이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이동이 필요한 사람의 현실적인 상황보다 행정적 기준이 우선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동이 절실한 사람에게조차 “이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이동권은 권리가 아니라 행정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제한된 제도가 되고 만다.

장애인 복지가 잘 갖춰진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장애인 콜택시가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반드시 필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지 않았다.

이미 일반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장애인도 쉽고 편리하며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는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구조로 설계되지 않았을까?”

장애인 인구가 300만 명에 가까워진 지금, 장애인의 이용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물이나 건축물 설계는 사실상 불법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공간과 교통 시스템이 장애인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왜 우리 사회는 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시스템을 처음부터 설계하지 못했는지 되묻게 된다.

결국 장애인 콜택시는 복지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 교통 시스템이 아직 모두를 위한 구조로 설계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을 복지 서비스처럼 바라보는 순간
그 권리는 쉽게 선별되고 제한된다.

이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시스템이라기보다 행정 업무 처리를 위한 구조에 가깝다 보니 복잡한 절차에 따라 등록을 해야 하고,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하며,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이용 횟수까지 제한된다.

그 과정 속에서 이동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니라
허락을 받아야 하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장애인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가진 시민이다.

이 사실은 정부와 행정기관, 그리고 공무원들부터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새겨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장애는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로, 질병으로, 노화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직 장애인이 되지 않았을 뿐인 우리와 같은 시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을 복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정책 속에서 잠시 등장했다가
예산과 관심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뒤로 밀려나는 영역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이 정치의 장식처럼 소비되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일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특별한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일일 뿐이다.

누군가는 명절이 되면 고향에 내려가 부모를 만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아침 직장으로 출근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는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 평범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바로 이동이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집 안에 가두는 사회다.

그래서 장애인의 이동권은 단순한 교통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기본 구조에 관한 이야기다.

장애인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 문장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대단히 특별한 요구가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작은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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