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청산 실패가 남긴 부끄러운 결과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말을 표현의 자유라 부르는 역사 부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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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잊을 만하면 기이한 장면이 반복된다.

최근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가 ‘철거’라고 적힌 마스크를 씌우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다.

“위안부는 매춘부였다”,
“국제 사기극이다”라는 말이 공개적으로 오가고
그 장면은 촬영되어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이를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그러나 이 행위는 의견의 표명이 아니다.
이미 역사적, 국제적으로 확인된 국가범죄의 피해자를 모욕하고 공적 사실을 훼손하는 반복적인 폭력이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무례를 넘어선 반인륜적 행동이다.

이것은 공적 역사에 대한 공격이며
비판이 아니라 명백한 역사 부정이다.

친일파조차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에서
역사 부정에 대한 법적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늘 이해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이 역사 왜곡은
점점 더 야비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금도 자신의 피해를 직접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왜 가해의 책임은 점점 더 흐려지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왜곡은 끊임없이 선을 넘는가.

이 질문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향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혼란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결과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력하며 권력과 재산을 유지한 세력은
해방 이후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다.

식민지 관료와 경찰, 친일 자본과 지식인들은
미군정과 새 국가 체제 속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었다.

그 결과 과거를 묻는 일은 곧 현재의 권력을 뒤흔드는 불편하고 위험한 요소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기록되었다.

불리한 사실은 축소되거나 누락되었고
책임은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희석되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 해방될 줄 몰랐다",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되었다”는 말은 그렇게 만들어진 서사다.

그러나 이 근대화는 조선인의 삶을 위한 발전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의 전쟁과 수탈을 효율화하기 위한 체계였다.

당시 쌀과 자원은 모조리 일본으로 넘어갔고
조선인은 강제 노동력으로 동원되었다.

주체 없는 발전은
발전이 아니라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친일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책임은 늘 피해자에게 향한다.

일본 제국이라는 가해 구조는 가리어지고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이 공격의 표적이 된다.

반박할 수 없는 아프고 슬픈 시간들.
죽지 않고 살아 있었음이 감사했던 존재들.

그래서 잊지 말아 달라 말하는,
그 아픈 기억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소녀상들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역사의 기록물이 되고,

그 진실을 지키려는 시민들 또한 결국 불편한 사람들로 취급된다.

이때 등장하는 말이
역사 부정자들이 내세우는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권리다.

말할 수 없는 피해자를 향한 허위 주장과 집단 모욕까지 보호하는 자유나 권리가 아니다.

역사 왜곡은 단순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명백히 국가를 상대로 하는 부정 행위다.

그것은 자유를 이용한 책임 회피이며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훼손하는 왜곡된 방식이다.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부정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문제가 인정되는 순간
사과는 도덕이 아니라 법과 책임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역사 부정행위들이 더 아픈 것은
그 왜곡의 앞줄에 또 한국인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제 일본을 옹호하기를 넘어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세계관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역사 부정자들이 서 있는 위치란 과연 어디인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왜곡으로 규정될수록
당시 식민지 동화정책에 대한 협력과 공조, 침묵의 책임은 다시 묻히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허구나 과장으로 처리된다면
일본 제국의 조직적 범죄는 더 이상 규명의 대상이 아닌 지워진 과거로 밀려난다.

그러면 일본의 책임은 점점 더 흐려진다.

누가 그 범죄에 협력했는가.
누가 진실에 침묵했는가.
그리고 그 침묵 위에서
누가 권력과 부를 이어받았는가.

식민지 시기의 협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변명 속에 묻히고
해방 이후 이어진 친일파 세력 중심의 기득권 구조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현실이 된다.

즉,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부정은
일본만을 위한 방어가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책임 구조를 보호하는 장치다.

그래서 그들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피해자의 증언이 사실로 인정되는 순간
그들이 지우려 했던 역사는
다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책임은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까지 닿게 된다.

그래서 소녀상은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소녀상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진실은 어느 누구도 지워낼 수 없다.

소녀상은 지나간 과거를 붙잡아 두기 위한 조형물이 아니다.

역사 속 그들이 지켜 낸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국권을 강탈 당했던 아픈 역사의 피해자 후손으로서
어떤 윤리 위에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소녀상은 과거에 머무르라는 상징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잊히기를 바라는 책임을 다시 상기시키고,
이 사회가 역사적 피해자 앞에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를 매 순간 드러내게 한다.

우리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긴 시대를 견뎌낸 이들의 후손이다.

직접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의 피해자가 아니었더라도,
나라를 잃고 한글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후손으로서 그들이 지켜 낸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역사를 부정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소한,
역사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반인륜적 행위가
사회적, 법적 기준 속에서 분명히 제어되어야 한다고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여섯 분만 남아 계신다.

살아 있는 증언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록이 남고,
그 기록을 지키는 책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증오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끊어지지 않게 잇는 일이다.

이제 역사 왜곡을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역사 부정자들의 폭력으로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피해자는 설명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설명해야 할 것은 국가다.

국가는 가해와 협력이 어떻게 정당화되었는지,
왜 그 책임이 회피되어 왔는지를 반드시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

국가는 더 늦기 전에
청산과 침묵 사이에서 결단해야 한다.

역사는 늘 복잡하고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복잡하다는 이유로
역사의 진실을 파괴하려는 폭력의 구조를
회피하거나 지워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국민에게
역사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은 결코 상대화될 수 없다.

역사의 기억을 지키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앞으로 어떤 기준 위에 설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은 더이상 묵과될 수 없다.

너무도 아프고 슬픈 역사이기에,
그 진실이 부정되고 왜곡되는 일을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국민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한,
이 사회는 절대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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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출처]

•아카이브814(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archive814.or.kr

•결(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kyeol.kr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museum.1945815.or.kr
•나눔의 집(일본군위안부피해자복지시설) nanum.org


•민들레,한국일보,중앙일보,경향신문,한겨레,기일보

MBC,KBS,SBS,YTN,연합뉴스(기사 종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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