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국가는 없었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추모하며...
.
.
.
슬픔이 머물던 그날로부터 3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날 밤, 텔레비전을 보던 중 ‘이태원 압사 사고’라는 속보 자막이 떠오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곧바로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 전화에 순간 심장이 한번 더 쿵 하고 내려 앉았다.
“너 어디야? 이태원 간 거 아니지?”
카톡으로 보낸 그 한 문장은,
그날 수많은 국민이 똑같이 느꼈던 불안이자 공포였다.
그 사고는 특정한 누군가의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든 발생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그곳에 있었던 이들은 운이 나빴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던 우리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말했다.
“왜 거길 갔냐.”
“놀다가 죽었네.”
그 말들은 차가운 칼날처럼 유가족의 가슴에 꽂혔다.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
그건 인간의 존엄을 잊은 사회였다.
오늘, 이재명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식 영상에서 말했다.
“그날, 국가는 없었습니다.”
그 말은 정부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한 진실된 고백이자 반성이었다.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을 막지 못한 사회,
그리고 그 책임을 끝내 회피했던 지난 시간들.
이제서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이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국가는 국민을 외면하지 않겠노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바로 잡겠노라 약속했다.
광화문에는 오늘, 수많은 시민이 모였다.
보랏빛 리본이 펄럭였고, 오전 10시 29분, 서울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그 소리는 단지 애도의 울림이 아니라,
다시는 국가의 부재로 생명을 잃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울림이었다.
올해는 외국인 희생자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그들은 방부 처리된 시신을 돌려받은 충격을 이야기하며,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쏟아냈다.
“왜 설명조차 없었습니까?”
“왜 그날 우리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습니까?”
국경은 달라도 슬픔은 같았다.
그렇게 이태원은 그날,
인류 전체의 상처가 된 장소가 되어버렸다.
홍성수 교수는 칼럼에서 말했다.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들이 부주의해서 스스로 너무 많이 모였다가 난 참사라는 말은, 인권의 본질을 모르는 발언이다.”[홍성수_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칼럼 중]
이태원 참사가 피해자들이 부주의해서 일어났다?
그 말은 국가가 또다시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2차 가해였다.
인권은 언제나 국가의 시선이 아니라 피해자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는 단지 행정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의 생명권을 지키지 못한 인권의 실패였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인데,
그날 국가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의 추모는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기억의 정의를 다시금 바로 잡아 세우는 일이다.
희생자들에게 “왜 그곳에 있었냐”고 묻는 대신,
우리는 이제 “그날 국가는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며, 인권 존중의 출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처럼,
“다시는 국가의 방임과 부재로 인해 억울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
그 약속이 선언으로만 남지 않기를,
부디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기를 바란다.
잊지 않겠다.
그날의 희생자들, 그날의 부재,
그리고 그날 우리가 잃었던 국가를.
기억하는 것이 애도이고,
애도가 곧 정의이기에.
이제라도 국가는 희생자들 기억하고, 유가족들을 외면하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태원 참사 3주기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요청이자 경고일 것이다.
.
.
.
2022.10.29
잊지 않겠습니다.
못다 핀 꽃들을 추모합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