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무너짐이 경고하는 구조적 침묵에 대하여



서울 동작구 소재 M 매장에서 배달 업무를 맡았던 40대 남성 직원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6일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3일 오후 6시경, 동작구의 한 건물에서 투신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사고 현장에서는 A씨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인쇄물이 발견됐다. 인쇄물에는 "재취업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파괴됐다", "너무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등의 절망적인 심경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위 내용은 한 매체가 전한 보도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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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푸드 업계는 빠른 업무 처리와 젊은 직원 중심의 조직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다.
그런 환경에서 40대 배달노동자였던 A씨는 내부 직원들과 융합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매장 내부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동료들과 협업하는 직원들과, 외부에서 홀로 움직이며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은 업무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이러한 구조는 비공식적인 위계 질서를 만들어내고, 구성원 간의 미묘한 단절감을 낳았을 수 있다.
누군가는 매장 안에서 팀을 이루고 움직이며 ‘동료’로 불렸고,
누군가는 매장 밖에서 혼자 배달을 하며 ‘외부인’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업무의 차이는 곧 관계의 차이가 되었고, 그 차이는 결국 위계로 굳어졌을 것이다.

그런 열악한 근무 조건과 조직 내 미묘한 소외감은 그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을 것이다.

A씨의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아무도 도울 수 없었을까.
그리고 왜, 그는 말하지 못했을까.

그의 침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말할 수 없게 만든 환경 속에서, 그는 결국 스스로를 지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너무 오래
‘듣지 않는 사회’로 머물러 있었다.

괴롭힘은 단지 개인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 안에서 자란다.
특히 M처럼 다층적인 위계와 가맹점 중심의 분절된 관리 체계를 가진 조직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목소리가 조직 안에서 사라지기 쉽다.

말하는 순간 ‘예민한 사람’,
버티지 못하면 ‘적응 못한 사람’,
도움을 청하면 ‘문제 있는 직원’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곤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조용히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다른 누군가를 또 같은 자리에 놓이게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침묵을 묵인해왔을까?

이 사회는 오래도록 괴롭힘을 ‘개인의 인성 문제’나 ‘일시적 다툼’으로 축소해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관리자는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는가.”
“고충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창구가 존재하는가.”
“현장에서 무시되거나 희화화되는 인격 손상에 대한 감수성이 조직 내에 존재하는가.”

이 모든 질문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우발적 죽음이 아니라 예고된 붕괴다.

그 누구도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 무너짐은, 오랫동안 쌓여온 구조적 침묵과 방관의 결과다.

책임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방치되었는가’에 있다.

M은 아직도 말을 아낀다.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 시간만큼, 누군가는 계속 고통 속에 일하고 있다.

기업은 이제 ‘가시적인 죽음’에만 반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죽음이 없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이름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구조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괴롭힘을 방치하는 조직문화를
‘조직력’, ‘위계질서’, ‘업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존속시켜왔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인간을 소모하는 방식의 경영이었고,
이제는 그 부작용이 더는 감춰질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

괴롭힘을 없애는 일은 단순히 가해자 한 명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가해자가 아무런 견제도 없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다.

우리 사회는,
늘 사건이 터진 뒤에야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외침은 잠시 뜨겁지만, 이내 식는다.
팔팔 끓는 냄비처럼 요란한 분노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잊고 만다.
그리고 그 틈에서, 또 다른 이름이 조용히 사라진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일하는 이들의 정신을 파괴할 뿐 아니라,
결국 그 조직 자체의 신뢰와 존속 기반을 무너뜨린다.
이제는 진짜 대답할 차례다.

무너진 그 자리를 다시 같은 방식으로 덮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

어느 한 사람의 절망이
구조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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