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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의 모든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그럼에도 새해 아침부터 한 가장에게 보내진 해고 통지서를 아이가 먼저 보게 만드는 사회라면,
이 사회는 최소한의 연민마저 내려놓은 상태라고 느껴진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도약을 꿈꾼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새해의 시작은
당장 다음 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고된 현실로 닥친다.
1월 1일,
누군가는 떡국을 먹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누군가는 새해 첫날부터 해고 통지서를 받으며 절망이라는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집으로 도착한 해고 통지서 한 장이
어느 가족의 새해 첫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삶의 희망을 무너뜨렸다.
청와대가 다시 돌아온 첫날,
청와대에서 미화,보안,조경,안내 업무를 맡아 오던
용역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었다.
수개월 동안 휴직 상태로 버텼고,
개방이 중단된 동안에도 필요한 일은 남아 있었지만
계약은 12월 31일로 끝나 있었다.
정부 측은 말한다.
“해고가 아니라 계약 종료다.”
“직접고용은 어렵다.”
그러나 국가 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일자리에서
고용을 유지할 책임은 끝내 국가의 몫이 되지 않았다.
화성시의 청소용역노동자 네 명은
계약 만료 통보를 불과 일주일 전에 받았다.
20년 넘게 이어져 오던 고용승계 관행은
‘근무평가’라는 이름 아래 판단됐다.
그 평가 기준에는
‘회사 이해관계를 우선함’ 같은 문장이 포함돼 있었다.
객관이라기보다 자의에 가까운 기준이었다.
노조 간부였다는 이유,
아이를 돌보느라 주말 근무를 하지 못했다는 사정은
근무평가 점수가 되었고,
그 점수는 계약 종료의 근거가 됐다.
오늘자 뉴스에 실린
세종의 한국지엠 물류센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20여 년간 하청업체가 바뀌어도 이어져 오던 고용승계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근로자 지위를 주장하자 즉시 중단됐다.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라
도급계약 종료와 업체 폐업,
그리고 집단해고였다.
새해 첫날,
영하 11도의 바람 속에서
96명이 텐트 안에서 떡국을 먹었다.
“매년 아이와 집에서 먹던 떡국인데,
올해는 여기서 먹네요.”
그 말은 한 개인의 사연이 아니라
이 구조 속에서 반복되어 온 결과였다.
이 모든 사건에서 사측의 말은 비슷하다.
“해고가 아니라 계약 종료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계약은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삶의 연속이다.
노조를 만들었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말했고,
대화를 요구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일터 상실이라면,
이 사회에서 노동자는
도대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 존재인가.
새해라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새해라는 시간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더 또렷하게 드러낼 뿐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한 가정의 생계 기반이 단숨에 흔들렸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구조적으로 반복돼 온 고용 방식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은 여전히
개인의 불운처럼 취급되고,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노동자의 일자리는
단순한 계약 관계가 아니다.
한 가정의 생활을 지탱하는 조건이며,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해고와 계약 종료를 너무 쉽게 말한다.
그 이후의 삶은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 둔 채,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 한 발 물러선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 문제를 다루는 사회가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부나 기업의 입장에서 이 글을 본다면,
현실을 알지도 못한 채 쓴 글이라고
폄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을 위해 일해 온 노동자들의 생계를
하루아침에,
그것도 새해 첫날부터 무너뜨리는 선택은
연민을 내려놓은 결정일 뿐 아니라
책임을 회피한 태도라는 점이다.
새해 첫날부터 이어진
여러 해고와 계약 종료 사례들을 보며
국민으로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느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사건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굳어져 버린 고용 구조와
그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최근의 쿠팡 사태를 보며,
정부가 앞으로 어떤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특정 기업을 두둔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플랫폼을 통해 생계를 이어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현실이
정책 판단 과정에서 너무 쉽게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문제의식이다.
만약 쿠팡이
영업정지나 시장 퇴출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 결정 이후
그 안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쿠팡을 대체할 수 있는 구조는 준비돼 있는가.
아니면 그 노동자들이
모든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기업의 책임을 흐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분명히 묻기 위한 것이다.
불량한 경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발생할
고용 붕괴와 생계 단절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는
별도의 문제다.
아무런 대체 제도도,
고용 안전망도 마련하지 않은 채
“처벌했다”는 결론만 남긴다면,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약한 쪽,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다 떠안아야 한다.
대체 제도 없이,
고용 안전망 없이
플랫폼 하나를 정리하는 선택은
그 안에서 일해 온 사람들의 삶을
가장 먼저 무너뜨린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기업 보호도,
감정적인 처벌도 아니다.
문제를 바로잡되,
그 결과를 정부와 사회가 함께 감당하겠다는 태도다.
적어도 세 가지는 분명히 제시돼야 한다.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이 중단될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공공적, 제도적 장치와
해당 구조에 종속돼 일해 온 노동자들의 생계를
일정 기간 보장하고
재취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안전망,
그리고 외주, 플랫폼 구조 속에서
고용 책임을 어디까지 국가가 짊어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다.
이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채 내려지는
모든 강경한 결정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생계 공백을 만들어낼 뿐이다.
지금 이 사회가 그 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책임을 묻기 전에,
책임을 질 준비부터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쿠팡의 불량한 경영이 이 지점에 이르기까지 방치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책임은 회피되어서도,
묵인되어서도 안 된다.
새해는 그저
시간의 흐름이 새로 시작됐음을 알릴 뿐,
누구에게도 특별한 삶의 배려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묻고 싶다.
이 사회는 지금,
누구의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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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출처]
한겨레, 매일노동신문, YTN(기사 종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