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된 사유의 축복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의 풍경은 마치 거대한 미로의 터널처럼 한 존재를 사방에서 가두고 숨 막히게 합니다. 외부의 질서와 정의라는 나침반이 고장 난 지금, 나 자신은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까요.
이 혼돈 속에서 지극히 이기적인 희망을 찾는 것은, 사회를 구원할 거창한 사명감 이전에 '나'라는 존재가 이 냉혹한 바닷속에서 침몰하지 않고 온전히 떠오를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근원적인 시도입니다. 외부의 구원이 아닌,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희망이 됩니다.
한 존재는 숱한 나날들을 겉돌며 생각의 낭비를 해왔는지도 모른다고 자각합니다.
세상의 소란에 귀 기울이며 했던 복잡한 번민,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소모적인 고통들.
그러나 장자가 말했듯, 세상이 '낭비'라고 규정하는 것들이야말로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지혜를 품고 있습니다. 겉돌며 했던 그 모든 사유의 편린들은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번민의 무게, 그 고독한 사색의 시간들이 바로 자신을 재구성하기 위한 고된 작업이었으며, 지금 이 순간, 깨고 나와야 할 알의 껍질을 단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인위적인 자극이나 외부의 동기 부여에 의한 것이 아닌, 오직 내면에서 묵묵히 진행되어 온 삶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알에서 깨어나고자 하는 무위(無爲)의 부화입니다.
현재의 나는 자기 강제와 구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나 자신이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가둔 견고한 껍질입니다. 이제 이 껍질을 스스로의 힘으로 부화(孵化) 해야 합니다.
부화는 외부의 힘이 아닌, 내부의 힘으로 껍질을 밀어내는 생명의 순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이치를 따르지 못하고 방황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알의 내벽에 새겨진 '삶의 교훈'이 됩니다. 그 교훈을 먹고 자란 나의 본질이 마침내 껍질을 밀어낼 힘을 얻습니다.
이 행위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은 외부의 기대와 규율에 굴복하는 고통이 아닌, 가장 담백하고 맑은 나(淡)로 태어나기 위한 작은 죽음이며 해방의 몸짓입니다. 어리석음처럼 보일지라도, 이 고독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내면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차가운 바다에 갇혔던 양심과 희망을 건져 올리는 일은, 외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내 안의 가장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전히 자기 힘으로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서는 그 순간,
한 존재는 비로소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지극한 즐거움, 내가 나를 즐탁 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서 껍질이 갈라지는 미세한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로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