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과 황혼 사이, 무위(無爲)의 춤을
언제부터인가 산꽃이 질 때면 집 담벼락 밑으로 노랑나비 떼들이 몰려옵니다.
나의 작은 텃밭 주변을 가득 메운 노랑해나비꽃. 올해는 그 수가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 빛깔 고운 노란 물결은 마치 땅에서 솟아난 수많은 나비들이 햇살을 받아 일제히 날갯짓하는 듯합니다.
고놈들은 신기하게도 날아가지도 않고 같은 자리에서 날갯짓을 합니다.
해가 뜨면 노오란 날갯짓을 시작해서 해가 지면 지친 듯 그 짓을 접고 곤히 잠듭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경이로운지, 오십 줄의 어설픈 순수 감성이 발동되어 이른 아침부터 해 뜰 시간에 맞추어 그 옆을 지키고 앉았습니다.
첫 비상의 찰나를 보고 싶어 다리가 저려오도록 잠든 노랑나비를 뚫어지게 봤건만, 이미 내 눈을 피해 날갯짓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네 일상처럼 고놈들도 살아 움직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순리(順理)' 그 자체입니다.
해맞이꽃, 무위(無爲)의 춤을 추다
나는 도시농부로서 십수 년을 흙과 벗하며 살아왔습니다.
흙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은 나에게 노자(老子)의 '무위(無爲)' 사상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억지로 잡아끌거나, 급하게 재촉하지 않아도, 자연은 그 자체의 리듬과 흐름에 따라 가장 완벽한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노랑해나비꽃, 즉 해맞이꽃은 바로 그 무위의 춤을 추는 존재입니다.
해가 뜨면 피어나고, 해가 지면 오므라드는 그들의 일상은 어떠한 욕심도, 어떠한 과시도 없습니다. 그저 자연의 빛에 반응하며 존재할 뿐입니다. 마치 어리석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맑고 순수한 지혜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애씀' 속에서 살아가는가요.
많이 얻기 위해 애쓰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애쓰고, 심지어 더 행복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노랑해나비꽃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애씀이 진정 그대들을 자유롭게 하는가?" 그들은 애쓰지 않고, 다만 자연의 빛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가장 찬란하게 빛납니다.
꽃과 나의 교감, 물화(物化)의 순간
몇 년 전, 그 꽃봉오리가 펴는 찰나를 보고 싶어 해 뜰 무렵, 그 옆을 지켰던 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속도로 '피어남'을 확인하려 했던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 자체가 나에게 깊은 교감을 선물했습니다.
내가 지치도록 응시하고 있는 동안에도, 꽃은 자신의 리듬대로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장자(莊子)의 물화(物化)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꽃을 관찰하는 인간이 아니라, 꽃과 함께 새벽의 기운을 느끼고 빛을 기다리는 하나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노랑해나비꽃은 나의 텃밭을 지키는 존재를 넘어, 나의 오랜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하며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주절댑니다. 나는 그들에게 '노랑해나비꽃'이라는 나만의 이름을 지어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무위의 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영혼은 맑아집니다.
새벽과 황혼 사이, 무위(無爲)의 춤을
노랑해나비꽃이 전하는 삶의 여백
해맞이꽃이 해를 따라 피고 지는 모습은, 우리에게 삶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화려하게 피어났다가도 해가 지면 미련 없이 꽃봉오리를 접고 잠드는 그 모습은 '집착 없는 내려놓음'과 '충분함 속의 휴식'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가요. 지나간 시간, 다가올 미래, 그리고 나의 통제 밖에 있는 수많은 일들. 그러나 노랑해나비꽃은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빛을 온전히 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휴식에 들 줄 아는 지혜를 말입니다.
나의 내면의 세계는 이 노랑해나비꽃과의 교감을 통해 더욱 맑고 투명해집니다. 그들의 무위적인 삶의 방식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었던 나의 영혼을 고요히 다독이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갈 용기를 줍니다.
내일도 해가 뜨면 나의 텃밭에는 노랑해나비꽃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들은 화려하게 날아오르려 애쓰지 않습니다. 다만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빛을 받으며 가장 충만한 자신으로 존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