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

내 가슴에 깃든 얄궂은 울림

by 담우


어젯밤, 느닷없이 겨울의 문턱을 넘어 귀뚜라미 한 마리가 적막한 내 방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창문은 닫혀 있었건만, 녀석은 어찌 알고 내 마음의 가장자리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왔는지요. 떠난 가을을 아쉬워하듯, 혹은 다가온 긴 겨울을 혼자 보내기 싫다는 듯, 녀석은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노래하고 울었습니다.


그 맑고 집요한 울음소리에 나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잠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찌르르" 하고 신호를 보내면, 나도 모르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그래, 나도 여기 있다" 하고 화답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밤새도록 서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노래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전해지는 진동이었습니다. 텅 빈 방 안 가득 채워지는 그 파동 속에 내 영혼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새벽빛이 푸르게 번져오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불청객입니다. 나를 뜬눈으로 밤새우게 하고도, 피곤함 대신 몽롱한 설렘만을 남겨두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나는 내 마음 밭이 이제는 풀 한 포기조차 자라기 힘겨운, 쩍 갈라진 건조한 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월의 두께만큼 감정은 무뎌졌고, 현실의 무게만큼 낭만은 사치라 여겼습니다. 내 나이의 계절은 가을의 끝자락, 이제는 낙엽처럼 바스락거릴 일만 남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내 가슴 한편에 구겨 박아 놓았던 그 낡은 감성들이, 녀석의 울음소리 한 번에 일순간 화산처럼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굳어있던 대지 아래, 아직 식지 않은 마그마가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은 한 방울의 생명수처럼, 혹은 작은 불씨처럼 내 죽어있던 감각들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나는 흘러내리는 그 벅찬 감정들을 혹여나 잃어버릴까 봐, 떨리는 손으로 주섬주섬 주워 담기에 바빴습니다.


아직도 내 나이에 이런 감성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거울 속의 나를 낯설고도 환하게 미소 짓게 만듭니다.


이 늦가을 밤, 불쑥 찾아와 준 그 '귀뚜라미' 덕분에 내 메마른 가지에는 기적처럼 물이 오릅니다. 다시 살아난 이 감성들은 삼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 우담바라라도 피워낼 기세입니다.


이제 곧 사나운 겨울이 닥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내 방, 아니 내 마음속에는 밤새 울어주던 그 따스한 울림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올겨울엔 꼭, 이 되살아난 복덕(福德)의 마음으로, 세상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예쁘고 비밀스러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 귀뚜라미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면, 나는 언제든 기꺼이 잠을 설치며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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