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쓰는 어른

by 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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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선생님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두 권을 모두 다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동, 글을 읽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2차원의 텍스트를 머릿속에서 굴려서 공감각적 차원의 데이터로 변환하는 피로감을 동반하는 행위인데, 양희은 선생님의 글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그냥 선생님의 옆에 앉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도란도란 듣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선생님과 교류가 있는 사이도 아니고, 선생님께서는 나란 사람에 대해 1도 모르실 테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시겠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방송을 보며 자란지라 선생님이 건네는 인사와 말들을 들으면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치 오래 붙잡고 있던 우산 손잡이를 만져보면 따뜻한 것처럼. 선생님이 남긴 말들과 행적에는 온기가 있다.


작년에는 장기하 님과 허지웅 님의 수필을 읽었다. 장기하 씨의 수필은 새로운 솔로 앨범을 앞둔 설렘과 막막함을, 허지웅 씨의 수필은 투병 생활 동안 겪었던 여러 일들과 마음의 부침을 담았다. 모두 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후루룩 읽었다. 이런 수필을 읽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내 마음은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비추는 호수 같아지는 느낌이 든다.


글 쓰는 전업 작가의 수필보다 이렇게 다른 본래의 직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글을 더 좋아한다. 나부터가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씩 짬을 내서 글을 쓰기 때문에 이런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공감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역설적으로 글을 쓰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마치 무심하게 손톱 발톱이 자라는 것처럼. 삶을 살다 보면 굳은살처럼 올라오는 상념들을 어딘가 가지런히 모아두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흘려보내는 생각들은 이내 사라져 버리지만, 글은 남는다. 사진, 브이로그는 소리를 담고 모습을 담지만 글은 생각을 담는다. 어쩌면 글은 누군가의 '정수'와 '본질'을 남길 수 있는 가장 그윽한 수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재주가 모자라서, 막상 일상을 살아가다 내 생각을 글로 적고 싶은 순간들이 오면, 멍석을 깔아줬는데 움츠리는 사람처럼 글을 쓰다 말다 지웠다 썼다 하며 손을 멈췄다. 어떤 말을 적을지 모르겠어서가 아니라,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던 생각들이 텍스트가 되면 어디에 실리고 싶어서, 출판되고 싶어서 기를 쓰고 '척'을 하는 글처럼 보였다.


물론 정제되고 구조적인 글도 좋은 글이고 필요한 곳이 있겠지만(내 글이 그랬다는 게 아니다.), 나는 말하듯이 글을 쓰고 싶다. 무료한 대학생부터, 공립 도서관에 더위를 피하러 오신 어르신들까지. 그냥 부담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양희은 선생님의 글처럼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매번 시도는 하는데, 엎어지기만 하니, 어느 세월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냥 계속하염없이 적어볼 뿐이다.


어쩌면 너무 과한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 삶과 일 중 어느 것에서도 딱히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할 만한 것이 없는 내가 꾸기에는 너무 큰 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별 것 아닌 일상 안에서도 보석 같은 순간들을 살아내고 덤덤하게 글로 적을 수 있는 어른이. 지금 당장의 나에게는 너무 버겁고 큰 꿈이어도 행복하게 꿀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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