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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미리 그려둔 표지 두 장의 펜터치를 모두 끝내고 채색에 들어갔다.
채색 들어갔으면 결국 색 깔고 제목 박으면 끝날 일인데. 오랜만에 하는 일인 데다가, 학생도 동료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보니 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게 맞나? 이게 정말 최선인가? 결국 두 장 중에 한 장은 채색까지 다 하고 결국 엎어버렸고 나머지 한 장만 겨우 완성시켰다. 끝나고 거실에 나와 물을 한잔 마시는데 큰 전투를 치른 느낌이었다. 이런 날은 기가 쫙 빠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오랜만이다. 한 번은 졸업작품 했을 때, 그리고 한 번은 이제 막 데뷔했던 시절, 그리고 지금이다. 사실 입시를 했을 때는 몸이 힘들었지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지는 않았다. 남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앉아서 그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별 상관없는 얘기이긴 한데 그 당시에는 여러모로 신경 쓸 일들이 많아서 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여하튼 간에.
학원에서 학생들을 봐주거나 동료들 작품을 피드백할 때는 이렇게 안갯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처럼. 영감이 충만한 아이돌 제작자처럼. 명확한 아이디어와 비전이 내 눈앞에 존재했다. 내 직관은 항상 최선이라고 스스로에게 자부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보통 학생들은 자신의 작품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교실 모든 학생들과 입시계 전반의 그림들을 아울러서 학생의 그림을 본다. 자신의 그림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진 스타일이 흔한 스타일인지 고유한 스타일인지. 좌표를 알면 항로를 계산하기 훨씬 쉬워진다.
하지만 개인 작가의 작품의 영역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중의 입맛을 맞추는 것도 상업 만화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지만, 결국 개인 작가의 작품에서 작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작품의 정체성이 되고, 수많은 양산형 만화들 중에 개인 작가의 작품이 돋보일 수 있는 킥이 된다. 결국 개인 작가의 작품은 자기 자신을 알고 정체화시켜 대중에게 세일링 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작가들이 그렇게 에고가 센 게 아닐까 하는 자조적인 농담.
언젠가 주위 사람에게 '열등감이 나의 열정의 원천.'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많은 동료들과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주위 사람들의 그림을 의식하고 자신의 그림과 비교하며 또 다른 스텝을 나아가는 에너지로 삼기도 한다. 비교란 말이 부정적인 개념으로 자주 쓰이나 적절하게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좌표를 계산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과 엔진의 역할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좀 다른 이야기 같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난 핀터레스트 부자다.), 항상 내 것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언젠가는 이것이 과업이나 업보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니고.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마치 뭔가에 중독되었다가 금단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의 느낌?
첫 연재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첫 화를 완성하는데만 한 달이 걸리고, 연재기간 내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밤 새기를 일쑤. 건강이 망가지고 공황 장애가 생겼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결국 난 고갈되어서 연재를 중단했다. 하지만 최종화를 업로드했을 때 들었던 생각이 잊히지가 않는다. '다음엔 이것보다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까?' 다음 작품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하게 섭취한 카페인 때문일까? 여하튼 그 순간엔 온갖 영감이 떠올랐지만 현실의 파도 속에 좌초되어 살기 위해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코로나도 겪고 이사도 하다 보니 7년이 지났다.
7년 만에 다시 웹툰을 그리려 하니, 변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먼저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내 그림에 적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내가 의도한 분위기와 맛에 적합하게 쓰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첫 연재 때는 당선 후 반년 안에 연재를 시작해야 한다는 계약의 조건이 있었으나 지금은 딱히 그런 시한이 없는 것도 나에게는 행운이지만 함정이기도 했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수정할 시간도 넉넉하다는 말이 된다. 완성을 하고도 이게 더 낫지 않았을까, 저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면서 여러모로 수정해 보게 된다. 지지부진하고 짜증 나는 시간들이기도 하지만 행복하기도 했다. 7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정인을 다시 만나 몰아서 하는 연애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라고나 할까.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라도 남은 한 달 안에는 작품을 완성해서 투고를 마쳐야만 한다. 그래야 거절을 당하고 피드백을 받아도 대처할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한이 생겼으니 남은 것은 그 안에 할 수 있는 만큼 열정을 다 해서 내 그림을 그리면 된다. 신인 때는 더 잘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만 해서 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이제 뭐... 이게 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애초에 사람이 만드는 작품을 감상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다.
얘기가 좀 많이 돌아갔는데 여하튼 난 그림 그릴 때 딱히 남을 의식하지 않는 타입인 것 같다. 다른 사람 그림에 비해 내 그림이 나아 보여도. 그것이 내가 내 그림에 가지는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말은 못 되기 때문이다. 난 애초에 머릿속에 내 작품이 갖춰야 할 초안이 뚜렷하게 있고 나의 작업 과정의 8할은 그것을 현실에 구현해 내는 고군분투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그림이 아무리 뛰어나고 잘난 들 내가 구상한 초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다지 영향이 없다. 대신 나는 내 머릿속에 나만의 지옥을 짊어지고 산다. 너무너무 복잡하고 끔찍한 큐브. 하지만 기를 쓰고 풀어내고 싶은 매력적인 도파민 덩어리.
결국 어제의 나는 표지 두 장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은 절반도 실현하지 못한 데다 두 개중 하나는 심지어 엎어버렸지만. 냉수 한 번 들이키고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낙담하기엔 그것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나를 실현시키고 세우기 위해 반복되는 제련. 이 끝없는 전투에서 버텨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감사하기로 했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