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돈 받아서 아파트 중도금 보태라. 우리 같은 이상한 부모 만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 받을 자격 있어. 너."
한창 아파트 잔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여름이었다. 엄마의 조금은 부끄러운 듯, 침통한 듯한 어조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야. 결국 여태까지 나한테 했던 행동과 말들을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거야?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이 잔뜩 치밀어 올라 엄마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눈앞에는 그동안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날 통제하고, 아버지의 폭력을 묵인했던 엄마가 아닌 회한에 젖은 환갑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난 할 말을 잃고 결국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사로 한껏 치밀어 올랐던 나의 스트레스도 한결 가시고, 부모님의 죄책감도 가시고, 서로 윈윈이 되었달까.
자식은 부모와 놓고 보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존재다. 보통은 반대의 개념으로 들 많이 얘기하지만 나의 사견으로는 그렇다. 일단 세상에 내가 태어나는 과정에 있어서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고,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으며, (자식도 그렇다 하지만 부모에겐 입양이란 옵션도 있고, 시험관 시술도 있고, 임신 기간에 장애나 질환이 발견될 경우 부모에게 선택권이 생긴다.) 성장의 과정에 있어서 자식에겐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일절 없기 때문이다. 나쁜 부모를 가진 미성년의 자식이 부모에게서 도망쳐서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보호나 자립의 장치가 이 사회에 거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어떻게든 도망쳤다고 해도, 자식에게 그 상흔은 더 이상 아프진 않더라도 흉터처럼 평생을 함께하게 된다.
물론 이 세상에는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족들도 많겠으나 그들의 경우라도 자식이 손해이다. 자식들은 부모와 함께 하는 삶의 대부분을 미성숙한 개체로서 지낸다. 그들이 겨우 사회적으로 지성적으로 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가 되면, 부모는 빠르게 노쇄해져 가고, 어느새 소통이 아니라 부양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부모는 자신이 사랑해서 낳은 자식이 점점 이성을 지니며 지성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본다. 자식은 자신이 사랑하는 부모가 하루하루 쇠퇴하며 지성에서 멀어지는 과정을 싫어도 목도해야 한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난 그래서 부모가 되는 일보다 자식으로 태어나는 일이 종국엔 더 슬프고, 때문에 손해라고 생각한다.
조금 울분 섞인 어조로 쏟아내듯 말해버렸는데, 여하튼 더 이상 나조차 쇠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멋쩍은 나이대가 되었고, 그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라서, 2주에 한 번 정도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그 쇠퇴의 징후들을 눈으로도 성큼성큼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은 나를 보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왜 이렇게 등이 굽고 말랐어?" "너는 왜 이렇게 머리가 세고 빠져 버렸니." 이런 것도 동질감이라면 동질감인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더 이상 부모에게 나의 어렸을 적 그들의 잘잘못을 논하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의미도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노화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마지막 공감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어른으로 산 시간들이 조금 쌓이면서, 항상 나의 부모라고 대했던 그들을 그저 평범한 주위의 사람들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에게 나의 부모로 산 시간들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내 부모도 결국엔 사람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스트레스들과 난관들이 삶에 속속들이닥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했던 잘못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내가 그들의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 수 있고, 힘들었던 점은 공감도 할 수 있다. 공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중요한 지점이다.
어느 화창했던 오후. 아버지와 단 둘이 어색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아빠가 너희들 어렸을 때 많이 힘들게 했지. 미안하다. 아빠가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래서. 그러다가 불쑥 아빠가 안 하던 이야기를 했다. "혹시 아빠가 너네들 때렸니?"
사실 그전에 했던 말들도 충분히 놀라고 있었는데, 마지막 이야기에 난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생전 그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우리에게 귀신같이 화를 내고 매질을 하다가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끔한 얼굴을 하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는 그런 일들에 대해선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먼저 자신의 폭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다니. 참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서 나에게 저 질문을 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퇴직 후 처음으로 자신의 삶과 행적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행적도 되돌아본 끝에 나에게 저 질문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더 그렇다. 그래서 난 딱히 그날 아버지를 책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더 이상 그때의 아버지가 아니니까. 아버지는 마음이 아픈 엄마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우리 집에 가끔 와서 반찬을 주고 우리 집 고양이와 인사를 하는 젠틀한 노신사다. 애초에 예전의 아버지 그대로였다면 난 지금처럼 아버지와 주기적으로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억이 안 나는 것조차 사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지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해 가고 계신다. 두 분의 일상엔 그렇다 할 사건도, 일과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 똑같이 햇살을 보고 밥을 먹고 성실하게 늙어갈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추해 보려는 인간에게 시간은 여지없이 찾아와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지성과 기억력을 빼앗아간다.
하루하루 회한에 젖어 쇠퇴해 가는 부모를 보며. 그들이 남은 시간 동안 더 이상 나 때문에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저 돈을 주고서나마 조금의 안식이라도 얻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나도 더 이상 어렸을 때의 나로 갇히지 않고 나로서 살 수 있고, 그들도 남은 시간을 누군가의 부모가 아닌 그들로서 온전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은 전생의 업 때문에 부모자식 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난 그들에게 무슨 업이 있어서 자식으로 태어났을까. 이번 생애에 난 그 업을 모두 갚았을까? 부디 이번 생애에 우리 모두 각자의 업을 청산하고 더 좋은 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빌었다. 우리 엄마는 천주교인이지만. 이런 게 용서라면 난 이미 그들을 용서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마무리는 우리 엄마의 천주교식으로.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