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레시피

by 담우
IMG_1064.jpeg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어렸을 적 첫 요리는 라면이었다. 11살. 동생은 7살. 피아노 레슨을 가서 집을 비운 엄마를 대신해 뭔가를 만들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어른들처럼 멋지게 요리를 할 수 있어. 일종의 자기 효능감? 그러나 첫 요리는 실패로 끝났고, 동생이랑 밍밍하고 불어 터진 라면을 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제는 매일매일 내가 먹고 싶은 것 정도는 물리지 않게 메뉴를 바꿔가며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하루 한 끼. 내가 먹고 싶은 걸 그 전날부터 생각해 뒀다가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정성껏 요리를 해서 밥을 먹는다. 내 입맛이 어떤지, 그 입맛을 맞추려면 어떤 조미료를 써야 하는지도 얼추 안다. 내 입맛에 맞는 요리에 길들여지다 보니, 자연스레 배달 횟수도 줄게 되었다. 배달비로 거덜 나던 생활비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연어 휠렛, 트러플 오일, 소고기 등 재료에 변주를 줄 수 있는 폭도 자연스레 커졌다.


본격적으로 생활 요리를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부터였다. 요리란 게 별 것도 아니고, 역전의 재래시장에서 산 돼지 앞다리를 푹 끓여 수육을 해 먹거나, 집 앞 마트에서 싸게 떨이하는 부추를 사다가 부침가루 탈탈 묻혀서 부쳐내는 정도였다. 간혹 만나던 사람이 집에 놀러 오면 파스타를 볶아서 분위기를 돋우곤 했다. 그때의 요리는 딱히 식사라기보다는 포차의 안주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교 축제 부스에서 볼 법한 신입생의 패기가 느껴지는.


재료는 보잘것없었다. 마트에 흔하게 널린 5~6인용 파스타면. 본가의 추석선물세트에서 꺼내 업어온 카놀라유. 어떻게 보관하는지도, 다루는 지도 몰랐다. 남는 채소들은 담겨있던 비닐에 대충 넣어서 냉장고 채소 칸에 쑤셔 박았다. 대학교 원룸촌 냉장고는 왜 이렇게 성에가 자주 끼는 건지. 그런데 왜 채소는 금방 물러서 유통기간이 하루 이틀인 건지. 여름이 가까워질라치면 냉장고 속은 양상추와 냉동 닭가슴살로 가득 찼다. 양상추는 주황색으로 변했다가 흐물 해져 물러버리고 냉동 닭가슴살은 물려서 반년 넘게 방치되다가 방을 빼는 날 버려졌다. 그렇게 나의 요리에 대한 열정도 물러지고 버려지는 듯했다.


그러다 사회인이 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간 전셋집에서 난 나의 첫 반려 냉장고를 샀다. 대기업의 1인가구용 냉장고였다. 혼자 사는 살림에 굳이 이렇게 사람 키보다 큰 냉장고를 사야 할까 싶었지만, 대기업에서 출시한 냉장고에는 그 이상 작은 냉장고가 없었다. 50만 원 전후라 그냥 속는 셈 치고 결제를 했고, 이사 후 일주일 뒤, 요령 좋은 기사 두 분이 창문 밖으로 사다리차를 연결해서 냉장고를 들여주셨다.


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냉장고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컸고, 차가운 티타늄 빛깔의 문에선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나는 여태껏 그랬듯이 별 기대 없이 냉장고 안에 생수를 넣고, 제로 콜라를 넣고, 과일 채소 등을 넣었다. 그렇게 냉장고와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 나만의 냉장고를 써 보고 몇 주 뒤 내가 한 생각은, "아, 이런 게 냉장고였지."였다. 당연한 기능이지만 냉장고에 채소를 넣어도 금방 무르지 않았고, 김치는 시어 버리지 않고 적당한 맛을 유지했다. 날짜가 조금 지나 버려야 할 줄 알았던 우유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신선하게 유지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 이래서 돈을 들여 좋은 제품을 사는 거군.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효율적인 소비를 위해서 때로는 금액이 비교적 객관적인 척도가 되기도 한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어른 흉내를 내던 대학생이 사회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냉장고의 변천사와 비슷했다. 처음엔 부모님의 냉장고를 빌려 쓰고, 원룸 옵션으로 들어있는 형편없는 냉장고에서 어렵사리 일상을 일궈가다가 나만의 냉장고를 가지고 그 안을 요리조리 채워간다. 여전히 내 냉장고 속은 정리가 안 될 때도 있고 대책 없이 산만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만의 정리법도 생기고 루틴도 생긴다. 닭가슴살과 양상추만 가득했던, 어쩌면 빈곤했던 내 영혼과 닮아있었던 내 냉장고는, 이제는 미리 소분해서 얼려둔 채소들과 계란, 고단백 두유로 나름 내실 있게 채워진 냉장고로 거듭났다.


그런 냉장고의 진화와 더불어, 나의 요리 인생에는 더욱 다양한 시도와 레시피들이 넘나들기 시작했다. 한식 빼고는 기껏해야 패스트푸드, 중식, 일식 정도의 음식들만 접해봤었던 10대를 지나, 20대에는 파스타와 마라탕과 양꼬치를 접했고, 30대에는 훠궈와 동남아의 요리까지 그 접하는 폭이 점점 넓어졌다. 사실 외국 음식에 별로 거부감이 없는 편이라, 외국에 나가면 한식을 의식적으로 먹지 않고 되도록이면 다른 나라의 생소한 요리들을 많이 먹어보려고 한다. 짧고 유한한 인생에. 이렇게 먹을 것이 많은데. 한식만 먹고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아직도 대만에서 먹었던 훠궈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하이디라오도 가 보고 주변 국내 훠궈집들도 여기저기 가 봤는데 자꾸 아쉬움이 남다가 결국에는 집에서도 토마토탕을 끓여 먹는 어른이 되었다.


음식이 주는 또 다른 경험은 타인과 쉽게 쌓을 수 있는 공감대이다. 낯선 사람과 초면에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입맛을 가지고 계시냐 묻는 것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무엇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이 생긴다. 때문에 어떤 이에게 호감을 가지면 서로의 입맛을 알려주고 공유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자연스레 생긴다. 때문에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면 직접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입에 보편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달 음식이 아닌.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입맛으로 만들어진 음식. 내가 만든 음식을 타인에게 대접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고, 요리로 다시금 재현하는 자기소개다.


이렇게 돌아보면, 요리나 음식 같은 사소한 일상들도 결국엔 과거의 내가 조금씩 곁곁히 쌓아 온 나의 삶의 궤적이요, 기록이 아닌가 싶다. 요리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기본적인 원칙은 제철의 신선한 재료를, 충분한 시간을 써서 공을 들여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은 삶의 자세와도 직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 한다. 정성을 다 해서 만든 요리는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흔한 일상도 들이마시며 천천히 음미해 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곁의 창문에서 비치는 은은한 오후의 햇살처럼. 삶의 향기를 느낀다. 오늘은 두부면으로 만든 짜장면에 계란이랑 팽이버섯을 섞어서 부친 전을 곁들여 먹어야겠다.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도 혹시 식사 전이시라면, 훌륭한 한 끼가 되시길. 오늘의 한 끼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본 아페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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