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회생활이나 처세에 서툰 소년들을 보고 어른들은 간혹 꼰대스러운 말투로 ‘저 녀석 군대 좀 다녀와야 해.’하며 핀잔을 주곤 했었다. 근데 다녀오니까, 별 거 없던데요. 별 거 입니다만, 평생에 걸쳐 유세를 부릴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여하튼.
갓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어쩌다 보니 어른들 눈에 띄어 일찍이부터 강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20대 초반의 강사는 말이 강사지, 갓 초등학교 졸업한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정도의 얄팍한 사회인이라, 무엇이 어른인지 스스로 모르고 그저 어른들 틈바구니에 갇혀 졸졸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자기 자신도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주제에. 선생이라고 자아만 점점 커지니. 조금이라도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갈라치면 예민하게 출처를 찾고 편을 갈랐다. 갈라 치기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래야 내 편이 생겨 그 안에서 편안하게 두 발 뻗고 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개 소문이라는 것은. 평판이라는 것은. 객관적이기도 어려울뿐더러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굴절되고 왜곡되는 것이라. 다시금 근원지를 찾는다 하여도 처음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요, 의미도 없는 짓거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어른들도 편을 가르고 라인을 만들고 네 사람 내 사람을 나눴다는 것이었다. 난 자존감이 아직 뭔지도 모르오, 자존심도 없는 사회초년생이었기 때문에 A 보스가 시키는 일도 B 보스가 시키는 일도 반반씩 다 해줘 가면서 내 평판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이런 박쥐 같은 놈이라는 없느니만 못한 평판으로 돌아왔고, 난 학원판에 정이 떨어져 사회에 미련을 버리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에 입대하고 나서 보니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얼마나 얄팍하고 우스운지, 편이란 것들도 파벌이란 것들도 얼마나 우스운 놀음인지 깨닫게 되었다. 다른 게 아니라 늦은 나이에 입대한 덕분이었다. 나보다 한 두 살 어린 소년들이 누구는 무슨 병장 라인이네 누구는 병사 자율위원 내정이네 하는 소리를 내뱉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디 단체로 제갈량 병이라도 걸린 거야?
여하튼 이렇게 어른들의 정치와 처세에 질려버렸던 내가 지금의 여유 있고 조금의 아량이라도 남은 어른이 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지금의 원장님과 주위의 동료들 덕분이다. 우리 원장님과 동료들은 이 블로그의 존재 따위 전혀 모르시겠지만, 원래 남의 뒤에서 몰래 하는 축복과 칭찬들이 더 배덕감 있고 내밀하고 스릴 있고 건전하니까 말이다. 언젠가 발견한다고 해도 못 본 척 넘어가들 주시길.
원장님 덕에 나는 집단의 중간관리자라느니 전임이라느니 하는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N분의 1로 내 몫을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은 원장님의 덕목들 중 하나는 숨기지 않고 최대한 다 이야기하고 최대한 다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른으로서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자기의 패를 다 내보이고 상대가 가진 패를 내려치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것. 정말 어렵고 멋진 자세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 동료들의 유연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도 내가 나로서 일터에 존재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좀 추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아 현실적인 예시를 들자면, 우리 직장에서는 각자의 연애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 나이대에 통과해야 하는 인생의 관문이라느니 하는 주제도 없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해 준다. 세상이 모두 이렇게만 서로를 대한다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텐데. 물론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누긴 한다. 주담대 받는 법이라거나 전세 대출받는 법이라거나. 뭐 이건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단 삶의 행정적인 팁에 가깝긴 하지만.
여하튼 지금의 일터를 다니며 예전 어른들이(특히 아저씨들이) 술 마시면서 나한테 내뱉었던 푸념과 잔소리들은 8할이 개소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 한 번뿐인 인생이고 각자 원하는 삶이 있는 건데, 견제하고 충성하고 배신하고 그렇게들 살면 오롯한 자기 자신의 인생은 어느 세월에나 살 수 있나 혀를 차게 된다. 참으로 피곤한 인생. 그렇게들 살고 싶으시면 그렇게 사시게끔 내버려두려 한다. 대신 전 끌어들이지 마시고요.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그래서 난 입대를 앞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말하는 편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가서 엄한 거 이상한 거 배워오지 마라.’ 집단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곳일수록 구태가 쌓이기 마련이니까. 느네들은 그곳의 명예와 자부심만을 배워오기를. 어른들의 서열과 정치와 냄새나는 구태만은 간 김에 모두 내려놓고 오면 더할 나위 없고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