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를 끝낸 친정엄마의 입맛을 살리는 된장 묵은지

건강을 회복하는 친정엄마를 위해 딸이 차린 따뜻한 밥 한 끼

by 지에스더
이번에 네가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구나.



아빠에게 최근 내가 알게 된 된장으로 만드는 묵은지를 얘기했다. 아빠랑 엄마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단다. 내가 열심히 설명하니까 와서 만들어보라고 했다. 최근 항암치료를 잘 끝낸 친정엄마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돌아보면 엄마가 해준 반찬만 맛있다며 먹었다. 정작 엄마를 위한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린 일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 된장 묵은지로 엄마 입맛이 조금 더 생기면 좋겠다. 그동안 코로나로 친정에 제대로 가지 못했다.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라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드디어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친 기쁜 날이 왔으니 당장 가봐야지.



된장 묵은지는 지인의 집에서 처음 맛보았다. 별거 없어 보이는 반찬이었는데 먹으니 속이 편안하고 입맛을 좋게 해 주었다. 사각사각 씹히는 김치와 맵지 않으며 입안 가득 퍼지는 된장 향. 씹으면 씹을수록 맛있었다. 나도 모르게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세상에나 이런 반찬이 있었다니.


“어머, 이거 뭐예요?”

“저희 엄마가 어릴 때 자주 해주시던 반찬이에요. 엄마는 이걸 만들어줄 때 늘 그러셨어요. 김치는 버릴 게 하나도 없어.”

“어떻게 만들어요? 나도 해보고 싶어요.”


지인이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필요한 건 묵은지, 멸치, 다시마, 된장뿐. 준비물이 거창하지 않고 만들기도 쉬웠다. 요리 곰손인 내가 한 번에 따라 할 수 있었다. 김치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반찬으로 해먹은 지혜가 놀라웠다. 우리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반찬은 요란하지 않다. 된장과 김치의 조화는 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게 해 주었다.







집에 와서 당장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니 27개월 된 둘째 아이는 손으로 마구 집어 먹었다. 김치를 잘 안 먹는 첫째 아이조차 이거는 맵지 않다며 쉽게 먹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이번 김장김치 어떻게 다 먹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김치 하나 만으로 한 끼를 먹을 수 있겠다. 아이 밥상 차리는 부담이 확 내려갔다. 내가 어릴 적에는 김치만 있어도 밥을 맛있게 먹었다. 친정엄마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상을 차린 것 같은데. 내가 아이를 키우고 보니 늘 아이가 먹을 반찬이 고민이었다. 김치가 몸에 좋은 건 아는데 아이들이 잘 안 먹으니 어떻게 하면 아이가 김치를 잘 먹을 수 있을까? 숙제를 안고 사는 것 같았다. 이런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치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 이번에는 내가 만들어줄게요.”

“그러냐? 어떤 건지 궁금하네.”


12번 6개월동안 항암치료를 마친 친정엄마는 힘이 많이 빠져있고 기운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얼굴을 보니 내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아빠가 항암치료받는 엄마를 위해 끼니마다 밥을 하고 입맛을 돋우어주는 반찬을 만드셨다고 했다. 아빠 덕분에 엄마가 치료를 잘 끝낼 수 있었다고 하니 그저 감사했다. 나 역시 엄마를 위해 반찬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아빠가 가져다준 김장 김치통 뚜껑을 열었다. 갑자기 처음 엄마 암 소식을 받던 날이 떠올랐다.




엄마 대장암 이래.




2019년 9월. 즐거운 추석 명절날. 엄마는 나에게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그랬다. 엄마와 아빠가 내 앞에 앉았다. 엄마가 입을 여는데 머뭇거리는 모습이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큰일이라도 있겠어.

암이라고? 엄마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놀랐다. 우선 내 마음을 추슬렀다. 부모님 앞에서는 별 일 아닌 듯이 말했다. 오히려 이렇게 빨리 발견하게 된 게 어디냐며 감사하다고 그랬다. 생각지 않게 엄마 몸에서 암 덩어리를 발견한 게 기적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싸준 김치통 뚜껑을 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흘러나왔다. 남편은 우는 나를 위로했다.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 오라고 했다. 나는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갑자기 내 앞에 일어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엄마와 아무렇지 않게 통화했는데.

며칠 동안 마음을 잡기 어려웠다. 수술을 끝내고 치료를 받는 엄마에게는 늘 씩씩하게 연락했다. 눈물이 툭하면 나올지언정.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라고. 다 잘 될 거라고. 그랬던 순간들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김치통에서 김치를 한 포기 꺼냈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아주 작게 송송 썰었다. 냄비에 김치, 멸치 몇 마리, 다시마와 김치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었다. 된장을 한 숟가락 떠서 물에 풀었다. 뚜껑을 닫고 물이 조금 남을 때까지 계속 끓였다. 온 집안에 된장 냄새가 퍼져나갔다. 김치 숨이 죽고 물이 바닥에만 조금 있자 불을 껐다. 된장 묵은지가 만들어지는 동안 엄마는 그러셨다.



된장 냄새가 구수하구나.
얼른 먹어보고 싶네.




방금 한 따뜻한 밥을 푸고 김치를 보기 좋게 담았다. 엄마를 위한 밥상을 차리면서 감사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고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감격스러웠다. 엄마는 내가 만들어준 김치 반찬으로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드셨다. 엄마의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에 꽃이 피었다. 잘 먹어주는 엄마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이미
모두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엄마에게 만들어준 된장 묵은지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드릴 수 있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살아있어서 함께 누릴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 감사하고 행복하다.



밥도둑 된장 묵은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산후우울증에 빠진 나를 위로해준 고전 읽기와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