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에 빠진 나를 위로해준 고전 읽기와 필사

두 아이 엄마, 고전 읽기와 필사를 시작하다

by 지에스더

나는 만화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만화책을 볼수록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100원에 만화책 한 권을 빌려볼 수 있었다. 용돈은 만화책을 사거나 만화책을 빌려보는데 다 썼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었다.

새벽까지 만화책을 봤다.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였다. 쉬는 시간에는 책상 속에 넣어놨던 만화책을 꺼내서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었다. 재미없는 과목은 책상 속에 만화책을 넣고 힐끔힐끔 보기도 했다. 누구도 못 말리는 말괄량이 10대 소녀였다. 지금도 좋아하는 웹툰을 꼬박꼬박 챙겨본다.


나는 만화책을 포함해서 꾸준하게 책을 좋아했다. 20대가 되어 <로마인 이야기>나 <대망> 같은 긴 역사소설도 읽었다. 너무 양이 많은 책들이라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읽은 내용도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 계발서를 주로 읽었다. 나는 변하고 싶었다. 착하기만 하고 나약하기만 한 나를 보면 좀 답답했다. 몸과 마음이 강해지고 싶었다. 어떤 일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담대함을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읽을 때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크게 감동받았다. 책에 나온 내용대로 하다 보면 나 자신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 같았다. 오래가지 않았다. 몇 번 해보다가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보다며 포기했다. 좀처럼 나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심하게 허우적댔다. 나 혼자 감당하기에 벅찼다. 육아 세계는 너무 넓은 곳이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대로 애를 키우자니 답답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을 찾고자 육아서를 많이 읽었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나보다 더 나은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아서에 나오는 내용들을 따라 했다. 잘 되지 않았다. 그러면 다른 책을 찾아봤다. 끝도 없이 육아서를 읽었다.



아이 낳고 왜 이렇게 한없이 우울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걸까?

그동안 내가 읽은 책은 주로 육아서와 자기 계발서였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만 주변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채찍질했다. 이거로는 안 된다고, 한없이 부족하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하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차디찬 비평가였다. 내가 가진 높은 기준에서 보자니 한참 모자란 엄마였다.

둘째 아이를 낳고 엄청나게 우울했다.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수십 번 우울한 감정이 격하게 파도쳤다.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 건가 싶었다. 두 아이를 잘 키우기는커녕 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울이 가득한 세계 속에 나를 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며 100% 내 탓하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울한 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길이 있을 것 같았다. 오프라인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싶었지만 참여하기 어려웠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도전했다. 3개월 동안 주마다 1권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6개월 동안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평단도 참가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책은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가지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책이란 누군가 생각을 글로 묶은 거였다. 보니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었다. 저마다 다른 방법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책을 냈다고 해서 그 말이 다 맞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서 판단하며 읽어야 좋은 독서였다.

안 해보던 일이 어찌 쉽겠는가. 막막했고 어려웠다. 나는 ‘생각’이란 걸 하면서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책을 읽고도 변화가 없는 게 당연했다. 다른 사람보다 책을 빠르게 많이 읽고 싶다는 욕심만 컸다. 그전까지 남 보기에 좋은 독서, 죽은 지식을 쌓는 일에만 집중했다. 내 안에 진정한 깨달음은 없었다.


<토지>로 독서에 큰 변화를 맛보았다. 과한 책 편식에서 벗어났다. 처음으로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그동안 책은 빨리, 많이 읽어야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15분 혹은 소제목 한 개를 집중해서 읽고 필사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꾸준하게 베껴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생각을 적고 싶었다. 느낀 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이 왜 이리 막막하고 힘든 걸까?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공책 한쪽에 필사 문장과 내 생각을 꽉 채워서 쓰게 되었다.

공 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토지>를 읽으며 내 인생 자체가 이야기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 하나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으니까.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에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저 감사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들은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나는 누군가 힘겹게 얻은 자유를 값없이 선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누구나 사정이 있겠다고 이해했다. 보여주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니까. 나는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소중했다. 지금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까닭이 충분했다.


<토지> 필사하는 일에 적응한 뒤로 고전 문학을 읽고 필사하는 일에 도전했다. 2주마다 책 한 권을 깊게 읽으며 필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읽어야겠다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책들,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들을 천천히 읽었다. 여기에서는 내 생각 쓰는 일을 강조했다. 책에 밑줄 긋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글로 붙잡아두게 되었다.

<데미안>, <기탄잘리>, <니체의 말>, <명상록>,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싯다르타>, <새벽에 홀로 깨어> 따위 책들. 6개월 동안 10권 넘는 책을 읽으면서 깊게 생각하고 필사했다. 나는 빠르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한 권, 한 부분을 짧게 읽더라도 그 안에서 비판하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스스로 깨닫는 내용이 더 많았다.



내 이름 안에 가둔 그가 이 지하 감옥에서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주위에 벽을 쌓아 올리느라 언제나 분주합니다. 벽이 하늘을 향해 나날이 높아질수록 나는 그 어두운 그늘에 가린 나의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합니다.

<기탄잘리>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나 스스로 나를 발견하기 못하게 내 주변에 벽을 쌓고 있었다. 아주 단단한 벽. 어느 누구도 부술 수 없는 견고한 성을.



혼이여, 너는 자신을 학대하고 있구나. 그러면 너는 자신을 존중할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고, 네 인생도 거의 끝나간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

<명상록> 한 부분을 읽었다. 나는 행복을 다른 사람 관계에서 찾으려 했다. 나부터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았다. 있는 모습 그래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남들이 나를 칭찬해줘야 존재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나를 우울함 속에 빠뜨려 버렸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고전에서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 모습이 좀 부족하면 어떤가? 지금 충분하다. 나는 이미 완벽하게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 내가 나부터 위로해주고 토닥여줄 때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책에서 길을 찾고자 했던 내 발걸음. 이제는 책과 함께 걸으며 나를 알아간다. 오늘도 책 속에서 빛나는 한 문장을 읽고 필사하며 빛나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충분히 값지다.


필사로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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