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6개월 육아에 왜 이리 목을 매는 걸까?

나에게 필요한 건 내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였다.

by 지에스더



둘째 아이는 36개월까지
휴직하고 싶은데....




둘째 아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기뻤다. 낳기 좋은 때에 아이가 와서 감사했다. 기쁜 것도 잠시뿐. 앞으로 아이 키울 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를 따라다닌 문제는 육아휴직 기간이었다. 얼마나 육아휴직해야 좋은 걸까. 새로운 결정을 앞두고 나는 쳇바퀴 돌 듯 같은 문제로 끙끙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36개월을 육아휴직하고 싶었다. 내 손으로 아이가 만 3세 될 때까지 키우고 싶었다. 그러자니 돈이 문제였다. 1년 동안에는 수당이 나오니까 그럭저럭 살 수 있을 테다. 과연 육아휴직 2년 차부터 남편 벌이만으로 괜찮을까?

솔직히 자신 없었다. 딱 2년만 육아휴직한다면 1년은 어떻게든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3년을 육아휴직하려면 2년이나 오롯이 남편 벌이에 의존해야 하지 않은가. 안 되겠다 싶었다. 내려놓자니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노무 36개월이란 숫자가. 자꾸만 나를 한없이 흔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36개월에 매여 있는 걸까.











첫째 아이를 키울 때 수많은 육아 책을 읽었다. 애 좀 잘 기르고 싶은 마음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많은 책에서 말하기를 엄마가 적어도 36개월까지는 키우는 게 좋다고 한다는 것을.

읽을 때마다 첫째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첫째 아이를 24개월까지 키우고 복직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 선이었고 충분하게 애쓴 시간이었다. 하지만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힘겹게 노력한 시간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24개월까지 키워도 잘한 거지! 괜찮아!!”


나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그저 36개월을 채우지 못한 것만 생각했다. 누가 와서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에 자꾸 움츠러들었다.

모자란 것만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며 수도 없이 아플 때마다 심하게 자책했다. 어떻게든 36개월까지는 키웠어야 했는데. 그러면 아이가 덜 아팠을 거 아닌가.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을 다 내 탓으로 돌렸다.


둘째 아이 낳고 36개월을 휴직하려고 살펴보니까, 그 뒤에는 첫째 아이가 8살이 되는 해다. 나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꼭 휴직하고 싶었다.



“애 초등학교 들어가면 한 학기라도 휴직해. 애가 학교에서 너무 일찍 와. 학교 끝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잡아주려면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아. 8살이래도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하더라.”


지인이 말했다. 내 주변에서도 아이가 8살 되면 적어도 1학기 휴직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도 당연히 그래야지 생각했다.

막상 결정하자니 그것도 고민이었다. 두 아이는 48개월 차이 났다. 둘째 아이가 4살 되면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첫째 아이 1학년 때 한 학기 휴직을 가정하고 계산해보니 36개월 육아휴직이 아니었다. 자그마치 42개월?? 맙소사.




어떻게든 36개월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



그래, 첫째 아이 초등학교 다닐 때 휴직은 못 한다고 하자. 도저히 36개월은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겠다. 키우고 싶을 때까지 하고 나면 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동안 못해서 한이 된 내 마음의 짐을 풀어주고 싶었다.

36개월 그게 뭐라고. 스스로 이토록 힘들게 한단 말인가. 그냥 내가 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마음 편안하게 여겨도 되는 거잖아.



“왜 애를 36개월까지 키우지 않았어요?”


남들에게 욕 처먹는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포기를 못하냐고! 엄마가 되고 나니 별의별 숫자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 바뀔 줄이야.



“왜 그렇게 숫자에 매달리는 건데! 그냥 좀 편하게 살아. 마음 좀 내려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걸 왜 못하는 건데!!!!”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스스로 나 자신을 수도 없이 공격했다. 36개월을 포기하지 않는 나를 차갑게 대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고 부족한 거라며 함부로 여겼다.


내가 고민하며 힘겨워할 때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괜찮다”는 위로였다. 다른 누군가에게 받는 게 아닌, 나부터 내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 주는 거 말이다. 그럴 수 있다고, 엄마이기에 그런 거라고. 내가 먼저 나를 토닥여주면 되는 거였는데. 숫자에 힘겨워하는 나에게 차가운 말로 공격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나를 위로해줄 수 있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나 자신에게 모질게 말하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남이 힘들어하고 고민할 때는, 마음 넓고 착한 사람인 것 마냥 위로해주었으면서. 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은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할 뿐이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엄마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마음인걸. 아이를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그때 힘들어했던 나에게 찾아가서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다. 고민하는 것도 괜찮으니까, 마음 편안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나는 36개월이란 숫자에 약해지는 내 마음부터 알아줘야 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건지 나에게 다정하게 물어봤어야 했다. 나에게 제일 미안하다. 너무 막 대해서.

막연하게 책에서 36개월까지 엄마가 키우는 게 아이에게 좋다니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을 수 있는 거였다. 그럼 어떤가. 그게 뭐 잘못인가. 조금이라도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엄마라면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이지 않은가.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편안하게 바라보면 되었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누가 뭐래도 틀린 일이 아니에요.


영화 <인턴>에 나온 대사다. 70세로 다시 일하게 된 벤이 젊은 사장인 줄스를 위로할 때 해주는 말이다. 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영와 <인턴>, 출처: 네이버 포토




아... 나도 따뜻하게 위로받고 싶었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힘겨워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 온 마음 담아 귀 기울여 들어주려했다. 가장 착하고 세상 친절한 사람인 것 마냥. 그러면서 나에게는 한없이 차가웠다. 내 아픔은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작은 고민은 하찮게 여겼다. 나는 나에게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좋은 친절한 사람이 되려 한다. 내가 고민하고 힘겹게 결정하는 모든 순간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뭘 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나부터 내 편이 되어서 산다. 나는 내 찐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