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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2. 2018

[인도] 초모리리-라다크에 갔다.

자고로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해발 4,500m의 추위는 무시 할 수 없었다. 밤새 오들오들 떨다 눈을 뜨니 새벽5시였다. 가지고 있던 옷을 전부 입고 잤는데도 추웠다. 라다크에서 가장 오고 싶던 초모리리다. 이정도 추위쯤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자고로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것이 왜 위기 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꾸 이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기왕 일찍 눈이 떠졌으니 일출을 보러가야겠다.

주섬주섬 옷을 입을 것도 없이 자고 일어난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어제의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위기는 기회다!! 그럼 해돋이를 보러 어디로 가야 할까?     


일단 마을을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본능적으로 호수를 향해서 걸었다. 마을 끄트머리에 도달하니 호수와 마을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철조망 너머로 호수로 이어지는 작은 늪지가 보였다. 눈을  찌푸려가며  자세히 보니 길은 없고 대신 물길이 이리저리 나 있었다. 그래도 여차 저차 호수까지 다가갈 수 있어 보였다. ‘저 철조망만 넘어가면 호숫가로 갈 수 있어!’ 갑자기 의욕이 넘쳐흘렀다.  조심스레 비탈길을 내려가 철조망으로 다가갔다. 철도망은 생각한 것 보다 더 높고 단단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며 주위를 둘러보니 철문이 하나 있었다. 문에 자물쇠는 걸려 있지 않았지만 고리가 걸려 있었다. 갈고리를 서 이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며 눈치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 한분이 당당하고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옆에서 뻘쭘하게 서있던 나를 보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하신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신나서 따라 들어갔다. 철조망 안쪽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길'이 없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확신이 안섰다. 그래서 할머니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할머니는 아침기도를 드리기 위해 호숫가에 있는 곰파에 가고 계셨다. 이대로 할머니를 따라 곰파에 갈 것인가… 아니면 호숫가로 가서 해돋이를 볼 것인가.
새벽부터 찾아온 두번째 선택의 순간, 나는 해돋이를 선택했다. 그리고 어렴풋 보이기 시작한 푸른빛의 호숫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곰파에 가신다 하셨지


아무생각 없이 걷고 있는데 '찰랑~'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정체를 알 것 같은 소리였지만 무시하고 그냥 걸었더니 금새 발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찰랑~' 이제 소리의 정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발 주변을 바라보니 늪지대였다. 온통 노란색의 야생화로 덮혀 있어 몰랐는데 나는 늪을 건너는 중 이었다. 발목 언저리에서 물이 철렁이고 있었다. 양말과 헝겊으로 된 샌들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늪을 가로질렀다. 점점 호수가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해가 떠오른 뒤 늪은 이렇게 아름답다.


수면에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초모리리는 어떨까?

처음 초모리리를 봤을 때의 감동이 떠올라 호수가 가까워 질 수 록 기대감이 차올랐다.


처음 초모리리의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절벽위에서 였다.  초모리리를 내려다 본 순간 마치 다른 차원에 온 듯 한 느낌이 들었었다. 에메랄드 빛 호수와 함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산을 보자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분명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데 왠지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발 6,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 4,500m의 거대한 호수는 왠지 모르게 성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몇 시간이나 경건한 마음으로 호수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아틀라스가 지구를 떠받치다 목이 마르면 주모!!!를 외치고 소주를 사발에 받아서 마시는데, 그 사발에 담긴 소주가 바로 초모리리’ 라는 괴기스러운 이미지가 머리를 스쳐갔다.
큰일났다.
두근거림이 더 심해졌다.
이 두근거림과 경건한 마음이 해발4,500m의 고지대에서 부족한 산소 때문에 느끼는 착각이었는지 정말로 성스러운 무언가를 느낀 건지는 모르겠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할 때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까? 지난기억을 회상하다보니 갑자기 할머니의 뒤를 쫓아 곰파에 가야 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두손으로 푹 하고 호수를 떠서 마시고 싶다.
온 몸을 얼려버리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마을로 돌아가는데 '투그둑투그둑'소리와 함께 말이 내 옆을 지나 달려갔다. 뒤를 돌아 호수를 바라보니 초모리리에 태양이 내려오고 있었다.



고민도 잠시 어제 본 노을을 생각하니 해돋이를 포기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까워지는 것 같던 호수가 아무리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연하게 깔려 있던 구름은 어느새 두껍고 까만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파랗던 공기에 푸른 빛이 가시는 것이 이미 저 시커먼 구름 어딘가에 해는 떠 있는것 같다.


허허... 항상 날씨는 날 배신하지...
이것은 진리이자 팩트다.


‘하지만 이미 걷기 시작한 길. 해가 영롱하게 떠오르던, 시커먼 구름에 갇혀버리든 나는 호수가로 내 갈 길을 가련다.’
씁쓸한 마음으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계속해서 호숫가로 걸어갔다.

뚜껍게 깔린 구름을 헤치고 태양빛이 들어왔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호숫가에 도착하면 바로 그 순간, 기적적으로 하늘이 열릴지도 모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망상은 망상이고, 바람은 바람일 뿐 하늘은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호숫가에 도착해 하늘을 보니 잔뜩 구름낀 하늘은 호수와 맞다을 것 처럼 낮아져 있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도가 되어 땅으로 밀려오고, 구름은 나를 그대로 짖눌러 버릴 것 같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서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더 이상 호수를 바라 볼 수 가 없었다. 두려움이라는 낯선 감각에 놀라 서둘러 마을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40분 동안 걸어온 길을 20분 만에 돌아갔다.

    

저 파도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았다.
손을 뻗으면 구름이 그대로 잡힐 것 같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아까 왜 그렇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지, 도망치듯 마을로 돌아온 것이 멋쩍었다. 괜히 손가락으로 뺨을 매만지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하고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리였다. 소리를 따라 갔다. 눈앞에는 수 십 마리의 캐시미어가 있었다. 세상에나 캐시미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되다니 새삼스럽게 캐시미어의 귀여움에 감동이 밀려왔다.
     

초모리리를 오고 싶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바로 이곳에 사는 유목민 때문이었다. 초모리리는 해발4,520m에 위치한 인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며, 판공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잘 알려져 있지만, 판공초와 달리 초모리리 주변에는 아직도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걸로도 유명하다.

초모리리에 오는 길에 유목민도 만나고, 캐시미어도 봤다. 하지만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졸고 있는 캐시미어를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새벽부터 두 시간이 다되도록  방황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흐믓하게 캐시미어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캐시미어들 사이에서 불쑥 사람이 솟아났다.


갑자기 솟아난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캐시미어들의 다리를 교차로 묶고 있었다. ‘뭐하시는 거지?’ 할아버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캐시미어들 사이에서 머리 하나가 더 솟아났다. 이번에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캐시미어들에게 둘러싸여 젖을 짜고 있었다. 순번을 기다리듯이 얌전히 서 있던 캐시미어들의 다리가 서로서로 묶여 있었다. ‘아, 할아버지가 하고 계셨던게 이거 였구나, 젖을 짜기 편하게 하기 위해 자리를 묶어 놓았던 거구나.’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전 캐시미어들의 다리에 묶은 끈을 풀렀다.     

뒤이어 할머니도 솟아났다.



'일출은 못 봤지만, 캐시미어도 봤으니 이제 됐다. 이만하면 됐어. '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어.... 눈을 비비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는데...어... 하늘은 화창하기 그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30분을 걸어서 호숫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방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것인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다시 호숫가를 향해 걸어갔다.     


화창하고 맑은 하늘아래 초모리리는 새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분명 하나의 호수를 보고 있는데 그 안에 여러 개의 호수가 보였다. 한 겹, 두 겹, 세 겹 서로 다른 색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호수의 물. 호수 쪽에서 여전히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파도가 내 발 밑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아까 느낀 두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기분은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대로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지만, 이곳은 성스러운 호수다. 호수에 존경의 표하는 의미로 손이나 발을 담그는 정도는 되지만 수영이나 목욕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갑작스런 충동은 접어두고 손에 물을 적셔 입에 가져갔다. 판공초의 물을 짜다고 했는데... 초모리리는 전혀 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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