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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4. 2018

[인도] 누브라밸리-라다크에 갔다.

카르둥라,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나에게는 몇 가지 기분 좋아지는 포인트가 있다. 그 중 하나는‘3’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지 '3'이라는 틀에 끼워 맞춰지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동일한 물건을 3개를 사고, 갔던 장소를 3번 방문하면 성취감이 생긴다.
음식을 3인분을 주문하고, 같은 책을 3번 읽으면 뿌듯해진다.
친구는 3명이 있는 것이 좋고, 티타임을 3번 가지면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이런 갑작스런 의식의 흐름은 나의 여행 패턴을 이해하는데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라다크에 처음 방문해서 2달동안 투르툭에 3번 다녀온 정신나간 행동 말이다.

투르툭에 처음 끌린 이유는 홈스테이가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끌린 이유는 살구가 맛있어서다. 그리고 세 번째로 끌린 이유는 투르툭 이라는 글자가 왠지 333을 닮았다고 생각해서다.  

        

투르툭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판공초와 더불어 라다크의 필수 방문코스라고 일컬어진다. 투르툭에 가기 전부터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지, 아니면 투르툭이 333같이 생겨서 인지 투르툭에 가기도 전에 이미 투르툭이 인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마을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디를 가나 그렇지만, 혼자 다니는 여행자에게 교통에 관한 한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않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졌기에 가장 대중적인‘투어(tour)'라는 여행방법은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여행 방법이다.


Why?


첫째로 모르는 사람들과 2박3일을 함께 생활하고, 같이 다니는 것은 상당히 부끄럽다! (외국인과는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과 있으면 과묵해진다.)

둘째로 일정이 고정되어 있어서 맘에 드는 장소에서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지 못하는 것은 너무 속상하다.

셋째로 ‘처음 방문하는 장소는 혼자 가고 싶다!’라는  나름의 고집이 있다.


그렇기에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특히 이동시에- 나는 혼자였다.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혼자서 여행을 하는데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버스일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최북쪽 지역(라다크, 스피티)에서 버스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투르툭으로 가는 버스는 일주일에 단 한 대 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넘쳐나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섣불리 시도하기는 두렵다. 거기다 라다크의 일부 장소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inner line permit 이라는 허가증이 필요하다.


허가증이 요구되는 지역 중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지역은 다음과 같다.

누브라밸리(Nubra valley), 카르둥라(Khardung La),
투르툭(Turtuk), 훈드르(Hundar), 디스킷(Diskit),
판공초(Pangong Tso),만(Man), 메락(Merak),초모리리(Tso Moriri)


이는 라다크가 서북쪽으로는 파키스탄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중국(티베트지역)과 영토분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라다크의 생태계를 보호하기위함 이기도 하다. 외국인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허가증 발급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여행사를 통해서만 허가증이 발급 가능하지만, 여권만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허가증을 발급 받을 수 있고, 연장도 가능하다. 문제는 이 허가증의 유효기간이 단7일 이라는 것이다. 보통 허가증 검사는 레에서 외부 지역으로 나갈 때 시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에서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그 날을 기준으로  평균 체류기간인 2일 정도만 추가한 날짜까지 허가증이 유효하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2년간 라다크에 있는 3개월 동안 퍼밋을 8번 정도 받았는데, 딱 한번 레로 돌아오는 길에 허가증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운이 나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이유에서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중교통은 바로‘합승지프’이다.

합승지프는 작은 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적지와 경유지가 정해져 있는 지프에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간다. 종점까지 가도 되고 목적지가 중간이라면 그전에 내려도 된다. 물론 중간에 합승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합승지프’로 투르툭에 가는 방법을 알아내는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3일이다. 레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라다키(라다크 사람)은 투르툭을 몰랐다. 합승지프도 투르툭 까지 가는 것은 없었다. 투르툭에 가기 위해서는 투르툭으로 직접 가는 방법이 아닌, 누브라밸리의 주도인 디스킷으로 가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   

이 간단한 정보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라 정신승리를 해본다.


3일간 고생한 대가는 누브라밸리의 디스킷으로 가는 합승지프는 레 왕궁이 정면으로 보이는, 올드타운의 폴로그라운드에서 출발하며, 새벽6시부터 8시까지 매 시간마다 지프가 있다는 간단한 정보와 이 정보들을 오로지 낯선 사람들에게 던진 물음으로만 알아냈다는 뿌듯함과, 레 바자르에 인사를 할 사람이 많아 졌다는 것이다.

또르르... 눈에서 물이 흐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인터넷을 검색하면 5분이면 찾을 정보를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일일히 물어봐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린다니...고생을 사서한다. 앞으로도 고생길이 창창한 미래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투르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6시30분, 7시에 출발(예정)하는 지프를 타기위해 어기적어기적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아직 공기가 푸르스름한 시간, 거리에는 사람 대신 개와 소와 당나귀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폴로그라운드에는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이 합승지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퀴벌레 아님.수류탄 아님. 인도에서 처음 합승지프를 탔을때 승객배치의 당황함에 그린 그림-파란동그라미에는 절대 앉지말것.jpg


일반적으로 지프의 탑승정원은

[앞자리 1명, 중앙에 3명, 뒷자리에 3명]


하지만 인도에서는 다르다.

[앞자리 2명, 중앙에 4명, 뒷자리에 3명]


운전자를 제외하고 9명이다.





그리고 디스켓에 간다는 사람 수를 세어보니 10명이다. 초초하다.

디스켓에 가고자 하는 사람 중 내가 가장 늦게 도착 했다. 눈앞에 서 있는 검은색 지프에 나의 자리는 없을 지도 모른다.

홀로 눈치 싸움을 하며 이 난관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승객들을 확인하던 운전기사가 나를 부른다.


“헬로우! 헬로우!”


여기서 짐깐. 인도에서 '헬로우'는 적어도 7가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1.안녕.

2.나좀 봐요.

3.이리로 와봐요.

4.뭐가 문제인데요 ?

5.이거 맛 좀 봐봐요.

6.우리 잘 지내보자고요.

7.내 옷을 비싼 가격에 사지 않겠나? 물론 사기는 아닐세.


정말 무궁무진한 쓰임새가 있다.

다양한 ‘헬로우’의 의미 속에서 빛의 속도로 운전기사의‘헬로우’의 의미를 스캔했다.

3번 아니 4번인가? 웃음기 없는 운전기사의 표정에 살짝 긴장됐다.     

내가 너무 심각했었나?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었나, 괜히 무안해서 슬쩍 웃으면서 다가가니, 다짜고짜 팔을 쭉 뻗어 앞좌석을 가리킨다.     

“나요? 앞자리? 진짜로?”
갑작스런 자리배정에 기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으며 서있으니 기사님은 슬며시 웃으며 직접 차문을 열었고, 내 가방을 빼앗는 동시에 나를 앞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된 일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대로 앞좌석에 앉았다.          




‘야!! 외국인 최고다!!!!’
보는 눈만 없었으면 그대로 외쳤을 지도 모른다.

지프의 로얄석은 누가 뭐라 해도 앞자리다. 공간도 넓고 앞유리로 풍경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나는 오로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평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앞자리에 탄 나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을 뿐이다. 라다크는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장소임이 확실하다. 기분이 좋다.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빼고 차를 탈 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라다키(라다크 사람)들을 내려다 봤다. 왠지 승자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승자가 되는 건 언제나 즐겁다.          


7시 출발 예정이라고 한 지프는 8시가 넘어서야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차곡차곡 사람이 타기 시작한다. 중앙자리에 4명이 탄다.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가 무릎에 앉으며 5명 탑승완료. 뒷자리에도 꾸역꾸역 4명이 앉았다. 혼자서 앞자리에 앉아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미러로 뒷자리를 슬쩍 바라보니 이렇게 흐믓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도 양심은 있는 여자다. 뒷자리의 엄마 무릎에 앉은 아이에게 "앞에 같이 앉을래?" 라고 물어보니 아이는 엄마와 미소를 주고받고선 고개를 저었다. 역시 라다크는 정과 배려가 넘치는 곳이다.     


1시간이나 늦게 출발한 지프는 바로 카르둥라를 넘어 디스켓으로 갈 줄 알았는데 레의 골목을 지나 어느 주택가로 들어간다. 좋아 보이는 커다란 집 앞에 지프가 멈춰 섰다. 그리고  '빵빵'경적이 두 번 울렸다. 아저씨 한분이 등장했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니 빙긋 웃는다.

불길하다.


내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나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온 아저씨는 앞문을 열고 나를 운전석 쪽으로 밀어 넣었고,

그렇게 앞자리 승객은 2명이 됐다.

“어디까지 가세요?”소심하게 물었다.

“디스켓 까지 가지.”

"아...네..." 

운전사를 포함 10인승의 지프에는 이제 모두 12명이 탑승했다.

지프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엉덩이도 덜컹거리고, 기어변속을 할 때 마다 내 허벅지에는 멍이 들어갔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길이 문제지 앞좌석에 2명이 앉은 것은 예상 외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의외로 버스에 비해 승차감도 나쁘지 않았다. 아저씨의 체구가 작아서 인지 이정도 라면 6시간쯤이야 무난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앞자리 2명은 괜찮았다.

 지프는 이제 본격적인 오르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한번 지프가 멈춰 섰다.


불길하다.   


'빵빵' 다시 울리는 두 번의 경적.

또다시 엄습하는 불길한 기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저 멀리 보이던 작은 집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플라스틱 기름 통 을 들고 뛰어 온다. 참기름 병이 아니라 휘발유나 등유를  넣는 그 험악하게 생긴 통 말이다. 아주머니가 다가오니 기름통 도 커지고, 다른 손에는 또 다른 기름통이 보이고… 아. 진짜 험악하다.

‘오지마요오지마요오지마요오지마요오지마요오지마요’

마음속으로 ‘오지마요’를 한 이 백번은 외친 것 같다.  하지만 내 바람은  허공으로 흩어질 숙명이다. 아줌마는 지프로 다가왔다. 그리고 기름 냄새 풀풀 나는 기름통을 앞자리 좌석 아래에 실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나와 아저씨와 그 옆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내 가슴까지 밖에 안올 정도로 작은 아주머니와 내 어께 반만한 아저씨와 함께 앉아 있으니, 만약 이자리가 불편하다면 문제는 아무래도 나 인거 같다. 나인게 당연하겠지... 불평 할 수도 없다. 입에서 쓴맛이 난다. 이제 나는 다리는 가슴으로 부여잡고, 엉덩이는 1/3은 의자에 남은 2/3은 둥그런 기어위에 놓인 채 디스킷 까지 남은 5시간을 가야한다.     


사실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름 냄새가 뇌에 전달하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멀미체질인 내가‘구토 유발자'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기름 냄새를  맡으며 비포장 흙 도로를 1인용 좌석에 3명이 앉아서 올라가고 있다. 지금 향하는 곳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는 건 덤이다.           

육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내 두뇌는 오랜만에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만약 내가 앞자리에서 토 하는 경우를 생각했다. 나의 토 냄새 와 비주얼은 면적 약  2m x 1.5m의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울 것이고, 이른바 토파티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인도의 홀리도 아니고,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도 아니고 보령 머드축제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의 토사물을 뒤집어쓰고 희희낙낙 거리는 모습은 상상이 안간다. 아니 상상을 해서도 안된다. ‘여기빈 공간이!! 받아라 토다!!’갑자기 역겨워진다.

그냥 멀미약을 먹고 바로 잠드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 인 것  같다. 오늘은 특별히 멀미약을 하나 더 삼켰다.

흘러나오는 흥을 주체 할 수 없게 만드는 DJ Driver의 선곡도 인도산 멀미약 2알이면 자장가나 다름없다.     



 얼마나 잤을까? 살을 베는 듯한 추위에 잠에서 깼다. 추위에 맞서는 생존욕구 앞에서는 인도산 멀미약도 별 수 없다. 카르둥라(Khardung La) 정상이었다.   

카르둥라. 눈 얼굴의 고개 라는 의미를 지닌 이 곳에는  해발5602m의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가 있다. 카르둥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는 것 이외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있다. 과거 중앙아시아의 카스가얼(kashgar, 신장 자치구의 서부 도시)지역과 라다크를 잇는 교역로로 연간 10,000마리의 말과 낙타가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한다. 라다크 라는 말 역시 티베트어로 ‘하늘 도로의 땅’이라는 의미로 인도와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로 였다. 그리고 교역의 부산물로 현재 누브라 벨리의 훈드르 지역에는 인도 유일의 쌍봉 낙타가 살고  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길로 중국과의 물자 전달을 시도 했다고도 한다.          

이런 유서 깊은 카르둥라. 하지만 역사적 의미와는 별개로 이 길이 욕나올 정도로 춥고  험한 길임은 확실하다.          


해발5,602m 라는 높이는 쉽게 감이 안 잡힌다. 일반적으로 해발고도가 100m 높아질 때 마다 기온은 0.65℃ 떨어진다. 따라서 해발 5,602m는 평지에 비해(서울은 해발 34m) 36℃나 낮다. 6,000m이상의 고산에 빙하와 만년설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거기에 빙하에서 밀려오는 냉기와 산 정상의 강한 바람에 체감 온도는 영하나 다름없다.          


7월임에도 불구하고 카르둥라 정상에는 아직도 얼음이 남아 있었고 도로 옆 산등성이에는 빙하도 보였다. 바람은 어찌나 센지, 코부터 시작해서 손가락 발가락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주섬주섬 하나 뿐인 짚업 점퍼를 입으려 했는데, 옷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맞다. 내 옷은 가방과 함께 지프 지붕위로 올라가 있었다.
이런 젠장…’추워서 욕이 나왔다. 석유냄새로 꽉 들어찬 차의 창문을 닫을 수 도 없었다. 이럴 때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참 좋다. 중얼중얼 욕을 해도 욕하는지 모르니까.


이런 고개(pass) 따위 그냥 넘어가면 좋으련만, 기사님은 [카르둥라] 라고 적힌 간판을  가르키며, “사진 찍을래요?”라고 말하면 굳이 차를 세웠다.

“아니 괜찮아…요”라고 말을 끝낼 새도 없이 기사님은 차 밖으로 나가버리고, 승객들도  하나 둘 차 밖으로 나갔다. ‘쾅,쾅,쾅,쾅’ 네 번의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차 안에는 나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 만이 남았다. 창문 열린 차 안에 있으나, 밖에 나가나 추운건 매 한 가지겠지...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로를 발로 밟아 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지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한층 차가웠다. 너무 추워서 얇은 반팔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며 총총 뛰어다니니 어김없이 인도인들과 외국인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한국에서는 날 보고 웃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왜 인도나 해외에서는 다들 나만보면 웃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요. 옷 입고 와요.”
나도 입고 싶다. 입을 옷이 있었으면 내가 영하의 날씨에 반팔을 입고 이러고 있었을까…. 나는 흘러나오는 콧물을 들이 마시며 말했다.

“괜찮아요. 추위에 강해서요.”
허세도 이런 허세가 없다. 점점 거짓말이 능숙해 지는 느낌이다.     



카르둥라 정상에는 돌무더기와 그것을 감싸는 무수히 많은 룽타가 있었다. 이 룽타는 이 장소의 신성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장소에 사고가 자주 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카르둥라에서 내려 다보는 협곡이 왠지 위협적으로 보였다.     

더 이상 이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작은 찻집에 들어가 뜨거운 짜이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운전기사를 찾았다. 그런데‘툭’인중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차갑다. 뭐지? ‘톡톡’ 코 위로, 팔위로 차가운 것들이 또 떨어 졌다.
‘눈이다! 7월 정오에 내리는 눈이라니...’
나는 첫눈을 본 개처럼 카르둥라를 뛰어 다녔다.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여기는 해발5,602m. 나 같은 고산 새내기가 감히 뛰어다닐 곳이 아니다. 많이 뛰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몸의 반응을 아랑곳 하지 않고 좀더 ‘와우!’를 연발하며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이 온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리고 눈에 정신 팔린 나를 부르는 운전사의 외침에 마지못해 지프 안으로 들어갔다. 지프에 빼곡이 사람이 들어차니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 짐을 느꼈다. 이러다 고산병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다행인 것은 카르둥라를 넘어서는 계속 고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심각하게 고산증을 겪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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