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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4. 2018

[인도] 디스킷-라다크에 갔다.

디스킷에는 요괴팔이 있다? 없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가슴에 전해지는 답답함도, 엉덩이에 전해지는 강렬한 통증도 감겨오는 눈꺼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카르둥라를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감겼던 눈을 뜨니 누브라밸리의 주도인 디스킷에 도착했다.

레에서 타고 온 합승지프로 갈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버스나 다른 지프로 갈아타고 이동해야한다.


누브라밸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자 주도인 디스킷(Diskit) 이지만.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디스킷을 그나마 유명하게 만든 것은 누브라밸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큰 디스킷 곰파와, 33m의 거대 미륵불상이다. 이 불상은 파키스탄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교정신답게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불과 30년전까지도 파키스탄과  국지전이 있었던 누브라밸리의 투르툭을 생각하면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디스킷 곰파와 거대 불상을 향해 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차도를 따라 올라가는  방법과, 그냥 산을 가로질러 무작정 위로위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물론 차도가 안전하지만 산을  가로질러 가는편이 빠르다. 지름길은 가라고 있는법.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무작정 산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올라간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죽음의 강이라 불리는 사요크강과 디스킷  마을을 아무런 방해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누가 방해를 해줘도 좋다.

이것이 길인가, 스크레치 인가... 구분이 안될정도의 좁은 길 이었다. 내려오는 길 이라면 미끄러울지도 모르나, 올라가기에는 미끄러울 정도의 경사는 아니었다. (다시한번)하지만 휘몰아치는 모래바람과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술 그리고 내 아래 조금 떨어진 곳을 씽씽 달려올라가는 차와 오토바이를 보고 있으니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하고 있는건가...' 갑작스런 의문이 들었다. 내 주위에 있는 것 이라고는 붉은 모래와 마른 바람뿐. 갑자기 밀려오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눈물이 찔끔 났다. 하지만 등 뒤의 엄청난 파노라마 뷰를 보니 여기서 돌아 내려가기는 무서웠다. 제자리에 서서 바라보면 광활하고 시원한 광경이었지만, 그걸 바라보고 내려가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계속 홀로 위로 올라 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10분 올라가다 바위에 걸터 앉아 멍하니 사요크강을 바라보고, 또 10분 올라가다 사요크강을 바라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감은 사라지고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바로앞 흙길이 아닌 저 멀리 굽이굽이 차도를 따라 올라 왔어야 했다.


다시 봐도 무섭다. 나는 왜 이 길로 온 것인가........


 30분이 넘게 숨을 헐떡이며 정상까지 올라가니 33m의 미륵불상이 아닌 철조망이 나타났다. 내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한 100m쯤 전에 ‘길’이라고 여겼던 흔적이 끊어져 있었다. 급격히 흔들리는 눈동자. 주위를 돌아보니 철조망 아래 구멍도 없고, 문도 없다. 더욱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아까 마지막으로 쉴 때 도로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가야 했었나 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이 길을 내려가기는 무서웠다. 발 디딜 때마다 길 아래로 쏟아지는 흙들을 보니, 저 것이 내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는 선택지는 바로 x표를 그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은 이 철조망을 넘어가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행히 철조망은 내 가슴 정도의 높이로 카메라 가방만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면 넘어갈 수는 있어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 먼 타국에서 범죄자처럼 철조망을 넘어 가는 모습이라니...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드는데 ‘흐흐흐’나도 모르게 이상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기가 막히면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완벽한 풍경이 눈앞에 있는데, 사진을 안 찍을 수는 없다.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외국인이 관람대 뒤 철조망 밖에서 서성이니 퍽이나 시선을 끌었나보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인도인들이 나를 구경하러 왔다.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저기요. 제가 길을 잘 못 들어서요... 이 철조망을 넘어가야 하는데 도와주시겠어요?”

철조망 바로 앞에 있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하자 자기들끼리 웃기 시작했다.

“그럼요. 가방 들어 줄까요?” 아이들은 웃음을 멈추진 않았지만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카메라와 옷가지가 들어있는 제법 묵직한 가방이라 불안했지만 순순히 철조망 너머로 가방을 넘겼다.

“네...부탁합니다.”

혹시라도 내 무게 때문에 철조망이 뒤로 넘어가서 나와 함께 이 내리막을 같이 내려 갈까봐 조심조심 최대한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도록 철조망을 넘었다.

‘휴’

“감사합니다.”카메라 가방을 건 내 받으며 말했다.

가방을 들어줬던 아이들의 목적은 내가 무사히 철조망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 주는 것 이었나보다.

가방을 건 내 받기 무섭게 아이들이 물었다.

“가방에 뭐들었어요? 카메라 들었죠?”아이들은 내가 철조망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모습을 본것 같다.

“네. 찍어줄까요?”

대답도 없이 아이들은 저마다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철조망이 남긴 멍이 2주는 남아 있던 것 같다.          

미리 준비했던 포즈들....



33m 미륵불이 있는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았다. 불상은 산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 불상은 인구 2,000명도 안되는 디스킷 주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라다크 사람들의 불심은 내가 생각했던것 그 이상으로 깊은것 같다.


미륵불은 생각하는것 그 이상으로 거대하다.


그리고 불상 발치에서 저 멀리 디스킷 곰파를 바라보며 그 어느때보다 엄숙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디스킷 곰파. 아까 지프에서 뒷자리의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곳에 요괴(monster)의 팔이 봉인되어 있단다. 모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정보를 듣고 그냥 지나 칠 수 없다. 곰파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라다크, 주위의 모든 것이 거대하기 때문에 내 눈과, 머리속의 정보를 이용한 원근감 판단은 의미가 없다. ) 방금 전 그 고생을 하고 올라온 것은 잊어버리고 다시 터벅터벅 경사를 가로질러 디스킷 곰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전망대를 빠져 나가기도 전에 주차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었다.


대충봐도 사악한 무엇인가가 봉인되어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봐도 그렇다

“어디가니?”

“디스킷 곰파요”

“걸어가게?”

“네. 오토바이가 없으니 걸어가야죠” 내 옆을 지나가는 오토바이 무리를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걸어가려면 1시간은 걸릴 거야”

“그럼 안 갈래요”

“!!!!!”


나의 빠른 포기에 아저씨는 디스킷곰파의 멋짐을 강조하며 꼭 가야한다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30분쯤 걸릴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먼 거리에 겁을 먹고 안간다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요괴 팔'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물었다.

“아저씨. 디스킷 곰파에 요괴 팔이 있다는게 사실인가요?”

“그런말은 어디서 들었니? 요괴 팔은 없어.”

헐... 나 또 속은 건가? 그런 사람으로 안보였는데... 혹시라도 지나가다가 만나면 좋겠다. 따지게...

“요괴팔은 헤미스 곰파에 있지.” 아저씨는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요?” 사람을 대놓고 의심할 정도로 버릇 없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의심하는 목소리와 의심하는 표정을 지은 것 같다. 사실 아저씨에게 요괴 팔에 대해 물어 볼 때 정말 창피했다.(수치심도 느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 본거라 이번에도 속으면 너무나 화 날 것 같았다.     

아저씨는 헤미스에 정말로 요괴팔이 봉인되어 있다고 말했다. 정말 진지하게. 다시한번 라다키를 믿어본다.



헤미스 곰파에는 가면극을 보러 갈 것이기에 아저씨의 말을 믿고 요괴팔을 찾아볼 거다.

그런데 헤미스에 요괴팔이 없다면 정말로 상처받을 것 같다...     

디스킷 곰파에 요괴팔도 없고, 나는 속아서 바보가 된 것 같고, 조금 상처 입은 것 같기도 했다. 더 이상 디스킷 곰파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차도를 따라 버스스탠드로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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