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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pr 20. 2023

공 하나의 간절함

퇴사하고 탁구 치러 갑니다_7

공/부/자


탁구를 시작하고,


첫 몇 주간은 기계 안에 공이 조금이라도 넉넉하지 않으면 100타를 치기도 전에 공이 안 나오는 상황에 맞닥뜨리곤 했습니다(기계 안으로 공을 못 넣어서..입니다.) 당황스러워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다른 분들이 부랴부랴 와서 공을 주워 텅 빈 기계 안에 넣어주곤 했습니다. 몇 달을 치다 보니 기계 밖으로 날아가는 공보다는 넣는 공이 조금 더 많아졌습니다. 기계가 덜컥거리지도 않고, 굴러다니는 공이 다른 분들을 위험하게 하지 않으니 다행입니다. 최근의 목표는 100타의 공 모두 밖으로 날아가지 않게 제대로 넣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공은 많으면 많을수록 든든했습니다. 다른 회원님들과 함께 칠 때에는 왼쪽 주머니에 다람쥐처럼 불룩하게 늘 공부터 가득 채우러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랠리를 길게 이어가기 힘들다 보니 공을 주우러 가는 것보다 주머니에서 꺼내서 치는 것이 빠르고, 흐름도 끊어지지 않으니까요.


공 하나, 그리고 간절함


꾸준히 다니다 보니 배움의 속도 비슷한 분들 외에도, 오래 치신 분들과 탁구를 칠 기회가 늘었습니다. 이분들, 공을 딱 하나만 가지고 치자고 하십니다. '오늘은 이 공으로만 치시는 거예요'... 왜 공이 하나여야 하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공부자였는데...


공 하나로 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우러 가야 하니, 그 시간조차 아까웠습니다. 랠리가 끊어지는 만큼 자신의 실력을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공의 숫자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습니다. 손에 다른 공을 들고 있지 않으니, 서브를 넣을 때 더 정확히 던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고, 하나뿐이기에 간절한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간절함, 그리고 기회


여기까지 쓴 이후, 새롭게 시작한 불규칙한 일들을 해내느라, 규칙적으로 하던 탁구 수업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간절함이라는 주제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글은 한 달 동안 작가의 서랍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탁구를 쳤을 뿐인데, '공 하나'를 마주하는 순간의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탁구공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여러 번 곱씹으며 그 마음을 돌아봅니다.


저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탁구공은 기회라는 단어와 맞닿아있었습니다. "일구이무(一球二無)-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던 김성근 감독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퇴사를 결정하던 순간은 이 공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탁구는 선택에 뒤 따르는 길을 향해가는 나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돌아보니 탁구를 치면서 글을 쓴 것이 퇴사 후의 여백의 시간에 널 뛰던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회가 있다는 생각으로 안일하게 순간들을 보내는 것과 매번 다가오는 순간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온전히 마음을 쏟는 것은 분명 앞으로의 일을 다른 모양새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경기의 방향을 틀 수 있는 공이 하나 날아왔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일구이무라는 생각으로 이 공을 잘 넣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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