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지금 탁구치는 중입니다_1
퇴사와 탁구_좋아하는 일을 할 거예요.
일터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가장 먼저 탁구를 등록했습니다.
일 그만두고 뭐하실 거예요? 이직하세요?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일을 할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고, 커-어다란 성과까지는 내지 않아도 되는, 아이 키우며, 사부작사부작 나이 들어도 나쁘지 않았던 일터였습니다. 하지만 일을 적당히… 계속하는 건 기쁘지 않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탁구였습니다.
일과 양육의 기쁨과 슬픔_나의 취향 따위!
어떤 운동을 좋아하느냐,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늘 ‘탁구’라고 외쳐왔지만, 탁구를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정작 탁구를 친 건 일 년에 한두 번 손에 꼽습니다. 대학교 공강 때 친구들과 모여서 휘두르던 그 맛, 재미로 복식 대회에 나가서 엉성한 자세로 준우승을 했던 소소한 성취,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가기 싫어서 탁구대에서 버티며 주고받았던 친구들과의 대화 덕에 서슴없이 탁구를 좋아한다고 말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취미로 배우기에 동네 탁구장은 너무 비쌌고, 혼자 들어설 용기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전에 용기 내서 시작했던 기타도, 다른 운동도 연일 이어지는 야근에 주 2회 배움을 더하면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집에 돌아오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체력은 달리고, 배움에 따라다니는 엄마로서 죄책감이라니. 나의 취향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퇴사로 주어진 여백,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울 차례가 왔습니다. 동그란 탁구채 위로 통통 탁구공이 튀어 오를 생각을 하니 자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잘 사는 기분
잘 산다는 건 뭘까. 친구랑 문자를 주고받다가 이런 대화를 마주했다.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서 밥 챙겨 먹고 출근하면 잘 사는 기분이 들고 좋더라.” 그 말에 나는 어떨 때 ‘잘 사는 기분’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권예슬_취향의 기쁨_잘 사는 기분/ p.083
아이들을 학교 앞에 내려주고, 탁구장에 무사히 도착한 첫날, 나는 잘 사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그만두는 용기가, 새로운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했다는 것이, 아이들도 내편도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준 순간들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해도 괜찮다고 온 세상이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탁구도, 프리 워커로 시작하는 새 일도 다 잘 될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첫날, 기계에서 날아오는 탁구공은 라켓에 맞고 연거푸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여기저기로 튀어 다른 테이블을 침범하고, 바닥엔 네트를 넘지 못한 공들이 쌓이고… 같은 시간을 이용하는 분들께 ‘죄송해요’를 연발해야 했습니다. 날렵한 발놀림은 어찌하는 것인지 모르겠고, 왼손은 갈 곳을 잃었으며, 티키타카 주고받던 탁구의 기억은 무색해진 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공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이런저런 걱정이 떠오를 틈도 없습니다. 제대로 배워봐야겠습니다. 취미라고 말하면서 따라다니던 약간의 부끄러움은 이제 내려놓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