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Jan 11. 2023

오롯한 시간

퇴사하고, 지금 탁구 치는 중입니다_5

기-승-전-탁구


탁구를 배우고 나니, 어떤 이야기 중에도 탁구 이야기가 자꾸만 끼어들게 됩니다. 탁구의 좋은 점, 탁구공이 잘 맞았을 때 나는 소리, 랠리가 길게 이어졌을 때의 성취감, 아픈 팔과 무릎조차도 이야기의 소재가 됩니다.

기-승-전-탁구라니, 이쯤 되면 아무리 나를 이뻐하는 사람이라도 지겨울만한데,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늘 귀를 기울여줍니다. 아이들은 한 술 더 뜨며 오늘은 어땠는지 묻고, 오늘은 엄마가 탁구 가는 날임을 눈 뜨자마자 알려주곤 합니다.


일상에 생기가 스며듭니다.


재미있는 건, 아이들도 어느 순간 탁구라켓을 자연스럽게 쥐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 나도 잘 쳐?” 탁구공 100개 튀기기는 아이들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에 자연스럽게 탁구가 스며들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해 주는 순간에 힘을 받곤 합니다. 야구선수가 꿈인 둘째는 며칠 전 야구를 했다며 일기를 쓰다가 “그런데 내가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됐지?” 하며 혼잣말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즐기는 일들을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같이 웃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하게 되었나 봅니다. 도서관에 가고, 다 같이 뒹굴거리며 책을 보고,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야구장에 가서 응원하고, 공을 던지거나 차며 놀고, 늦은 저녁 촉촉한 밤공기를 마시며 걷곤 하는 것도 그렇게 아이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때 생기는 좋은 에너지가 우리의 일상에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오롯한 시간


탁구를 치고 오면 직전 회사에서의 몇몇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상사의 눈물 섞인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자잘한 불평불만이 채팅창으로 전해지다 보면 어쩐지 하루를 다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같이 잘할까를 궁리하지 않는 시간이 쌓여가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기운이 쌓여 나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회사에 꽂았던 코드를 뽑기로 했습니다. 더 나은 결정이 있었을까라는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당분간 소득은 줄어들겠지만, 빈약해졌던 소중한 관계들이 다시 풍성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조금 사치스러운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합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서로의 플레이에 ’나이스‘를 외쳐주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궁리하는 곳에서 힘을 받습니다. 저에게 지금 탁구장이 꼭 그런 곳입니다. 나이스 한마디에 담긴 격려, 다른 회원분들에게 받는 긍정 에너지 덕분에 탁구 수업이 끝난 후에도 약간 달뜬 마음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몸은 지쳐도 오후에 하는 일에 힘이 솟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걸 하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운동과 달리 개인사를 묻지 않는 것도 좋습니다. 생각보다 격렬한 운동이라 틈이 없기도 하고, 서로 마주 선 거리도 제법 멀기 때문일 겁니다. 테이블 간격 정도의 적당한 거리감과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만으로 외롭지 않다."는 한 브런치 작가분의 말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탁구 치는 것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순간도, 나름의 다음을 준비하는 시간도, 오롯하게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좋은 에너지가 일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오늘도 만들어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성실함과 실력의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