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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y 21. 2022

멀티버스고 나발이고 우리 애들 좀 그만 괴롭혀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상)


*스포일러 주의! 반드시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분량이 길어져 상/하 편으로 나누어 업로드합니다! 감상에 참고 바랍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 영화를 보기 며칠 전에 꿨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렇다. 이 영화를 보는 꿈이었다! (얼마나 기대를 했으면...) 화면이 온통 시뻘건 빛인지 불꽃인지로 가득 메워져 있고, 그 무시무시한 붉은 공간에 완다가 나타나는데, 스트레인지가 아주 기이한 표정으로 그런 완다를 쳐다보는 꿈이었다. 좌석에 앉아서 한껏 집중하고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소름 끼쳐하며, '뭐야 뭐야, 설마 완다가 악역이야?'하고 속으로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장면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느낌 (출처 : 네이버 영화)

    놀랍게도 예지몽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말했다. '그거 멀티버스의 네가 먼저 본 거 아니냐'라고. 안녕, 멀티버스의 나. 너도 마블 빠구나? 아무튼... 멀티버스의 나에게 예기치 않게 스포일러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호러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답게 연출이 상당히 스릴 있게 전개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완다 막시모프(by 엘리자베스 올슨)’라는 인물의 역사 때문이다.

    본 작품을 관람하기 전,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하는 <완다비전>을 필수로 예습해야 한다는 건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터. 그러니 이 시리즈에 대한 논의를 조금 끌고 와보겠다. <완다비전>은 정말 잘 만든 시리즈다. 'Wanda and Vision(완다와 비전)'인지, 'Wanda's vision(완다의 비전-즉 환상)'인지 의미가 모호하도록 의도적으로 경계를 흐려놓는 작명 센스부터 시작해서, 회차마다 각기 다른 시대의 시트콤을 표방한 덕에 눈이 즐겁고, 미스터리를 추적해나가는 전개 방식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완다와 비전의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는 덤. 보다 보면 푹 빠져들어서 어느새 '완다의 인생도 이렇게나 곡절이 많았었구나', 안쓰러이 여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인물에게 서사가 주어지는 순간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 스칼렛 위치는 그다지 선호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음에도 <완다비전>을 보고 난 후 그 매력에 푹 빠져버렸으니까.) 완다의 힘과 인간성을 훌륭하게 풀어낸 시리즈였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완'며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 디즈니+)

    그러나 마블은 잔인하게도 이토록 설득력 있는 서사를 부여하자마자 가차 없이 완다를 퇴장시켜버린다. 어쩐지 이상했지. 웨스트뷰(<완다비전>에서 완다가 마법으로 통제한 마을)에 지대한 피해를 끼쳐 놓고 별다른 속죄나 보상 없이 그냥 훌훌 떠나버리는 결말이었으니까. 그때 이미 완다의 길은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스타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하이드라에 실험체로 합류한 과거를 생각하면, 시작부터 어긋난 탈선 열차였을지도) 그래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신 지배를 하는 와중에도 피해자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랐던 완다의 선함을 믿었다. 쌍둥이 오빠인 피에트로를 잃고도 일어나 싸웠던 완다의 강함을 믿었다.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시리즈 마지막 회, 텅 빈 집터에서 잃어버린 가족들에게 혼자 작별을 고하는 완다의 그 애수 어린 담담한 얼굴을 보고, 아픔을 품고도 대의와 선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영웅으로서의 행보를 기대했단 말입니다..!

    완다의 타락이 납득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진작에 흑화 했어도 할 말 없다. 그토록 강한 힘을 갖고도 완다는 아끼는 모든 것을 잃기만 했으니까. 더군다나 완다가 어벤져스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되짚어보면 그건 알량한 영웅심보다는 그저 살아남아 더 나은 삶을 선택하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완다는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처럼 순수한 정의를 상징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다만 사랑하는 이들과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무엇보다 갈망했던 개인인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이 아니라 <완다비전> 극장판이라던데?


    제목이 무색하게 너무 완다 얘기만 했는데, 반드시 필요한 빌드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우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는 과정에서 서서히 정신이 망가져 간 완다의 광기는, (비록 그 강도는 훨씬 약할지라도) 5년 간의 블립으로 인해 완다와 유사한 상실을 겪은 ‘스티븐 스트레인지(by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층 성숙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과 유의미한 대조를 이룬다.

안 돼..! 난 이런 걸 보려던 게 아니란 말이야..!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트레인지가 우주를 구하기 위해 사라져 있던 5년 간, ‘크리스틴 팔머(by 레이첼 맥아담스)’는 새로운 사랑을 찾고 결혼에 골인한다. 그리고 모든 우주를 통틀어 스트레인지는 크리스틴과 이어지지 않는다... (디즈니 플러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 유니버스까지 포함해도 말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우주에서 크리스틴의 상실은 스트레인지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늠쇠가 된다. 이를테면 타락해서 파괴왕이 된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 우주의 스트레인지가, 크리스틴을 잃고도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간다는 사실은 관객들에게 의외의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의 상실은 스트레인지를 타락하게 하지도, 절망에 잠겨 무너지게 하지도 않았다. '난 행복해', 거짓말을 하던 스트레인지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그럼에도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역시 ‘아메리카 차베즈(by 소치틀 고메즈)’의 공이 크다.  

달려라 아메리카 (출처 : 네이버 영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스트레인지는, 완다가 지적했듯이 정의와 아집 모호한 경계에  있다. 그러나 꽁지머리 스트레인지와는 다르게 결국 아메리카를 살리는 길을 택하면서,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크홀드라는 악의 수단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면서, 영웅으로서 스트레인지의 정체성은 한층 견고해진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계산적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인간의 편에  있을 것이고,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이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하) - 완다 아니 닥스의 기묘한 모험] 편을 이어서 감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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