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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y 21. 2022

완다 아니 닥스의 기묘한 모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하)


*스포일러 주의! 반드시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분량이 길어져 상/하 편으로 나누어 업로드합니다! 감상에 참고 바랍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상) - 멀티버스고 나발이고 우리 애들 좀 그만 괴롭혀요] 편을 먼저 감상해주세요!


<완다비전> 극장판 아니고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 맞습니다


    같은 마법사로서,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으로서, 완다와 스트레인지에게는 같은 기회-잃어버린 사랑을 멀티버스에서 되찾을-가 주어진다. 완다와 달리 스트레인지는 기꺼이 그 기회를 포기했다. 대신 오랜 세월 내뱉지 못했던 그 말을 붉은 머리의 크리스틴에게 들려줌으로써 상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 눈물겨운 완다의 모정 서사에도 굳게 잠겨 있던 내 수도꼭지가 속절없이 열릴 뻔했던 건 바로 이 대사 때문.

그렇게 애틋하게 쳐다보기 있기 없기?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해, 크리스틴. 모든 우주의 당신을.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게 싫은 건 아니야. 그저 무서울 뿐이지.


    지금껏 닥터 스트레인지는 명백한 나르시시스트로 그려져 왔다. 그는 언제나 '칼자루를 쥔' 사람이었고, 자신만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으로 파멸해버린 멀티버스의 또 다른 자신들을 보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 고통받은 완다가 제기하는 의문을 들으면서, 좁디좁은 자기 우주를 말 그대로 넓혀주는 아메리카에게 유대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인지는 성장했다.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자신이 때로는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도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냉철한 지성을 갖춘 능력자가 이제는 따스한 인간미마저 겸비하게 되었는데,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극장을 나온 모두가 완다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이 영화가 여전히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완다가 스트레인지의 성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소모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냥 아들들이 그리운 엄마였을 뿐인데 난데없이 호러 영화 귀신 역을 맡게 된 완다 도대체 이 끝없는 비극은 누굴 위한 것이던가? 토니, 피터, 완다까지, 보상도 없이 자꾸 생고생만 시키는 저의가 뭔지 스토리 짜는 사람들한테 좀 물어보고 싶다. 영화에 심오한 깊이를 더하는 것도 좋지만 어쨌든 히어로물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고 보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 마음을 비우자... (출처 : 네이버 영화)

    연애사는  어떻고? 도대체가 MCU에는 정상적으로 이어진 커플이 없다. 이쯤 되면 마블 경영진 중에 모태솔로가 있는  아닐까 로맨스물 싫어하는 내가 이렇게 주장할 정도면    거다. 나타샤-브루스, 스티브-페기(결국 이어졌지만 논란의 여지가..), 토니-페퍼, 피터-MJ, 해피-메이, 피터-가모라, 완다-비전, 스티븐-크리스틴, 하루 종일도   있어...

    연출 면에서도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는다. B급 호러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의 작품인 데다가, 이제껏 히어로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라는 야심 찬 프로모션 덕에 기대가 상당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호러와 오락 블록버스터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균형 잡기에 실패한 느낌이랄까. 어둠의 주문을 외우는 완다한테 요상한 BGM 깔아놓고 풀샷과 클로즈업샷을 오버레이 하는 장면, 닥터 스트레인지와 삼눈이 스트레인지가 음표 가지고 댄스 배틀 하는 장면에서 나만 당황한 거 아니잖아. (그 와중에 좀 멋있다고 생각하긴 함) 이건 뭐 복고 감성이라기엔 뼈대가 너무 2020년대 히어로물이라 묘하게 촌스럽다는 인상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완다가 그 '호러'의 주체일 줄은... (출처 : 네이버 영화)

    (조금 더 주절대자면 나는 멀티버스를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신들, 그리고 비슷한 듯 이질적인 풍경들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언캐니(unheimlich)'의 감정이 이 작품의 서스펜스를 촉발하는 주요 장치일 줄 알았다. 귀신 산발하고 다리 절면서 쫓아오는 완다, 캡틴 카터를 두 동강으로 썰어버리는 완다, 등 뒤에서 튀어나와 노인네 목을 똑, 하고 꺾어버리는 완다가 아니라...)

삼눈이의 거처 (출처 : 네이버 영화)

    차라리 B급 호러의 음울한 크리피함을 아예 강조해버리거나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 시리즈처럼) 한층 더 시리어스한 분위기로 갔다면 훨씬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흑화한 스트레인지가 상주하는 멸망 직전의 우주, 다크홀드가 소환되어있는 붉은 황무지, 프로페서 X가 침투하려다가 되려 역공당했던 완다의 머릿속 같은 배경들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영화의 서사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그와 대조되는 밝디 밝은 멀티버스가 난 좀 생경하게 느껴졌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던지는 농담들도 유쾌하다기보다는 빈정대는, 상당히 시니컬한 스타일이라 어두운 톤과 잘 어우러졌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래도 대형 자본이 들어갔으니 감독으로서는 대중성을 놓칠 수 없었겠지만.

(출처 : 네이버 영화)

    종합적으로 봤을 때, 눈 돌아가게 화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러 디멘션을 앞세워 그야말로 충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전편의 임팩트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도 호러 장르를 섞어보겠다는 시도는 신선했고, 앞으로 이렇게 대중적인 장르에서 더 과감한 시도들이 뒤따랐으면 좋겠다는 건 개인적인 소망.  

    더군다나 그야말로 '대혼돈의' 2편이었지만 나는 또 3편을 손꼽아 기다리련다. 이제는 MCU에 완전히 안착한 닥터 스트레인지가 또 뭘 보여줄 수 있을지, 잔뜩 기대가 되니까. 그러니까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 주세요


단 한 마디 사랑해, 닥터 스트레인지. 모든 장르의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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