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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Sep 17. 2022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드세요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글은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속 가상의 인물에 초점을 맞춰 작성되었습니다*


    아, 어찌나 예쁜 영화인지! 보는 내내 입을 헤 벌렸다. 18세기, 절대왕정 시기 프랑스 귀족들의 삶이란. 국가의 모든 부가 모조리 베르사유에 집중되어있던 그때, 민중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살고, 귀족은 오로지 유희를 위해 살았다는 걸 영화는 화려한 궁정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비추며 드러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자기네 삶을 담보 삼아 정교한 인형 놀음을 하는 고상한 멍청이들. 프랑스의 국모가 되었을 때 고작 18살이었던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by 커스틴 던스트)'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밀가루처럼 뽀얀 뺨엔 붉은 분이 내려앉고, 수수한 금발은 은빛으로 빗겨 높이 더 높이 말아 올라가고, 자연스런 생기가 도는 입술이 새빨갛게 칠해지는 동안 마리도 베르사유에 물들었다.


베르사유의 워너비 스타


    영화에서 마리가 무언가를 먹는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등장하지 않는다. 물을 마시는 장면만 한 번, 짧게 비춘다. 뭔가 먹긴 했음을 암시하는 장면조차 죄 식사다운 식사가 아닌, 회전목마처럼 동화적인 디저트들 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루이 16세(제이슨 슈워츠맨)'가 식사하는 모습을 마리가 빤히 쳐다보는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자주 등장하는데, 연출 의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음식의 섭취가 곧 생의 욕구를 상징한다면, 베르사유에서 마리의 삶은 스스로에게 진실하지도 절실하지도 못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까? 현실을 외면한 채 아담하고 안락한, 만들어진 자신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는 마리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알록달록 화려한 미장센, 18세기 의상과 21세기 음악의 신선한 조화, 그리고 그 분주한 향연에도 눌리지 않고 빛나는 커스틴 던스트. 그녀가 연기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참 순수하고, 해맑고, 자유롭지만 반항할 줄 모르는 솜사탕 같은 영혼을 지녀서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걸 넘어 서사 그 자체였다.

    좋은 시대를 타고났다면 아마 마리도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 국민 등골 브레이커로 몰려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그녀는, 사실 궁정에서 나고 자라 평생 궁 밖의 '세상'으로는 한 발도 디뎌보지 못한, 사치와 향락과 무료함에 질식하는 게 삶의 전부였던, 천진난만한 소녀에 불과했으니까.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는 역대 왕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파리에 비해 자유분방하고 검소한 오스트리아의 궁정에서 자랐기에, 오히려 별궁에서 친구들과 직접 연극을 공연하며 자연을 즐기는 소박한 성정에 가까웠다고.) 자신의 무지를 발견할 기회가 일평생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양측의 입장을 들어봐야죠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정반대로, 궁전의 가장 고상한 여인이 아닌 궁전 밖 평범한 민중의 시선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그려낸 영화가 있다. 바로 피에르 쉘러 감독의 <원 네이션>.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해볼 만한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어 언급하긴 했지만, 이 영화, 추천하지는 않겠다. 제발 보지 마세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원 네이션>은 바스티유 함락 - 새 헌법 개정 - 파리 민주 봉기 - 임시정부 수립 - 9월 학살 - 국민공회(왕정 폐지) - 루이 16세 처형까지를 다루는, 상당히 역사적인 드라마다. 당시 프랑스 대중, 그러니까 비귀족 계급은 부르주아 / 상퀼로트 / 프롤레타리아 3개의 계급으로 다시 나뉘었는데,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주아와 상퀼로트를 중심으로 일어난 혁명이다.

    즉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프랑스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염원하는 민중에 의해 일어난 위대한 투쟁이 아니라, 강력한 경제권을 쥐게 된 부르주아가 정치권력 역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의도로 일으킨 엘리트 혁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귀족-부르주아로 이루어진 엘리트 계급 내부에서 타협이 일어났고, 민중은 정치와는 관련 없이 경제적 투쟁을 했을 뿐. 당연히 민중에의 정치권력 양보도 부르주아의 공고한 지배력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행되었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다 보면, 새삼스레 민중은 역시 민중이고 귀족은 역시 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체제나 혁명의 의미에 대한 뚜렷한 인식, 고찰 없이 막연하게 흐름에 편승하는 대중. 그리고 일평생 특권을 먹고 자라 특권이 주어지지 않은 이들의 입장 따위는 죽었다 깨어나도 헤아리지 못하는 엘리트. <마리 앙투아네트>가 매력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지점은, 이러한 시대의 혼란 속에서 두 집단의 상호 이해 불가능한 충돌 그 자체보다는 한 개인의 내면적 서사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순진한 철부지 공주님이었던 마리는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와서 궁정생활의 고독과 지루함을 달래려고 온 힘을 다해 예쁘고 신나는 것들을 즐기다가,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힐 희생양으로 낙점되었다. 급격히 채도가 낮아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마리의 얼굴은, 두려움을 품고 있지만 제법 초연하다. 어쩌면 이 모든 고난이 결국에는 지나가리라는 희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갑자기 몰아닥치는 사건들이 현실감 없게 느껴져서였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마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에 내던져졌다. 말년에 보낸 편지에 마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에 진정한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마리,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쩌면 끝맺지 못한 비극적인 성장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마디 눈만 즐거운 영화일 줄 알았는데, 제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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