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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Sep 24. 2022

순두부 멘탈 역사덕후인 나, 알고 보니 몽유병 히어로?

문나이트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문나이트>는 6부작짜리 가벼운 시리즈라기보다는, 무려 5시간 분량의 장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다. 첫째, 구성과 전개, 규모가 그러하고. 둘째, 연출자의 의도가 그러하다. (제작 비하인드가 궁금한 분들은 <문나이트 어셈블>을 함께 관람하면 좋다) 1화를 틀자마자 '미쳤다!'를 외치며 이틀 만에 완주한 <문나이트>. 지금부터 그 매력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출처 : Instagram @themoonknight)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회적 이슈, 그중에서도 특히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마블답게, <문나이트>의 주역 '마크/스티븐(by 오스카 아이삭)' 역시 전형적인 영웅과 대비되는 독특한 면모를 갖췄다.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는 최초의 이집트계 히어로. 특히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특성은 연출에 십분 활용되며 단순히 주인공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넘어 서사의 키포인트로, 또 시리즈 자체의 정체성으로 작용한다.

거울공주 아닌데용 (출처 : MARVEL)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신박한 액션(?) 신. 제3의 인격이 튀어나와 주변의 적들을 초토화시킬 때마다, 카메라는 그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대신 마크/스티븐의 시점대로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시청자들이 가장 흥미를 느낄 법한 자극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도려내면서도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것은 역시 연출의 노련함일 터.

    파생된 인격인 스티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 또한 신의 한 수라 평하고 싶다. 처음으로 마크가 서사의 전면에 등장할 때 비로소 관객들은 이미 잔뜩 친근감을 쌓아 올린 스티븐이 아니라, 마크가 본래의 인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최초의 전환을 기점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주체와 객체-마크와 스티븐, 현실과 환상, 정의와 악-의 전복은 심리적 서사를 강조하는 장치인 동시에 시리즈 특유의 매력으로서 다가온다.


오늘부터 MCU 비주얼 센터


    주로 대도시에서 펼쳐졌던 영웅담의 무대를 광활한 사막으로 옮긴 것과 더불어, 미라를 기반으로 한 코스튬 디자인과 이집트 신들의 비주얼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초승달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한 마리의 은빛 박쥐! DC에 칠흑의 다크 나이트가 있다면 마블에는 순백의 문나이트가 있다. 거기에 이집트 색채 충만한 OST까지 곁들여주시니, 기깔나는 엔딩 크레딧을 어찌 매정하게 스킵해버리고 말겠는가? 007 시리즈의 오프닝 크레딧 이후 최고로 멋진 크레딧이었다.

너무 멋있어서 KIJUL (출처 : Instagram @themoonknight)

    히어로물에 인디아나 존스 식의 고대 유물 찾기 어드벤처를 결합한 것도 하나의 흥미로운 시도였다. 비록 고고학적으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할 유물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해버리는 등의 연출은 상당히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이집트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작품을 싫어합니다 어찌 됐든 덕분에 피라미드 같은 거대 유적의 내부라는 흥미로운 배경을 끌어들일 수 있었으니.

내 눈을 바라봐 (출처 : Instagram @themoonknight)

    그뿐이랴, 시리즈 중반, 약간 늘어지나 싶을 때 느닷없이 등장하는 정신병원 세트는 또 어떻고.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소재와 깊은 연관을 갖는 이 공간은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마크의 숨겨진 과거와 내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장이 되어준다.


차세대 타노스는 나야 나


    (적어도 내가 본 작품들 속에서는) 진지하고 냉철한 역할을 주로 맡아 온 오스카 아이삭이 <문나이트>를 통해 찌질하고 귀여운 역할(스티븐)도 소화할 수 있단 걸 입증했다면, 에단 호크는 그의 커리어에서 드물게도 악역을 연기한다. 미모가 절정에 달했던 <비포> 시리즈 때문일까,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풋풋한 모습 때문일까, 어쩐지 내게는 마냥 스윗~하고 핸섬~한 이미지였던 에단 호크.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배역을 망칠 거란 생각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지만, 단순히 '역할에 잘 어울린다'를 넘어 그의 내공 덕에 '해로우(by 에단 호크)'가 이토록 흥미진진한 악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령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인 첫 에피소드의 첫 시퀀스-이자 해로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는 전부 에단의 아이디어였다고!)

(출처 : MARVEL)

    해로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시 고행자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척결 대상에 자기 자신마저 포함시킨다는 점에서는 자연스레 인피니티 사가의 최대 빌런, 타노스가 연상된다. 다만 타노스가 강대한 육체와 냉철한 이성의 조화를 보여주는 악당이었다면, 이쪽은 좀 더 정신과 영혼을 강조한, 일명 사이비 교주 상이랄까. 화려한 언변으로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까지 구워삶는 모습을 보면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제모가 생각나기도.


    이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앞세워 다이나믹한 서사를 보여준 <문나이트>는 분명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그러나 결말은 짜증 날 정도로 어정쩡했다. 잔뜩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기는커녕 이렇게 새로운 떡밥을 뿌리면서 끝내버린다고? 분개하던 찰나에, '이 정도로 강력한 캐릭터를 창조해냈다면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봐야 한다'는 감독의 말에 납득해버리고 말았지 뭐야. 자, 그렇다면 디즈니 플러스는 이제 하루빨리 시즌 2를 내놓아주시죠!


단 한 마디 이집트에 가보고 싶어졌어요.


여담으로,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라일라/스칼렛 스카라브(by 메이 칼라마위)'도 멋진 비주얼과 액션을 선보였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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