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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Sep 14. 2022

화성에서 온 사나이

벨벳 골드마인


*스 주! 영화 관람 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70년대, 광기와 섹슈얼리티가 패션이 되고, 패션이 삶에서 너무나도 주요하고 지배적인 요소가 되어버린 탐미의 시대.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 믹 재거, 루 리드의 젊음이 찬란하게 불타오르던 글램 록의 전성기. <벨벳 골드마인>은 이토록 화려한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락스타의 연소와 부활(?)의 과정을 폭죽이 터지듯 눈부시게 그려낸다.


락스타 이즈 본


    사실 이 영화는 글램 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를 주인공으로 하는 전기 영화로 기획되었다. 정확히는 보위와 이기 팝의 스캔들을 중심으로, 양념 좀 버무려서. 그러나 보위 본인이 영화의 제작에 극도로 반대하며 제작진을 고소하겠다는 입장까지 보였기 때문에,  두 주인공은 각각 '브라이언 슬레이드(by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와 '커트 와일드(by 이완 맥그리거)'로 강제 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물론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역시 한 곡도 삽입할 수 없었다.  (대신 'Velvet Goldmine'이라는 제목은 보위가 발표한 동명의 곡에서 따왔다!)

전설 아니고 레전드, 그 이름은 데이비드 보위 (출처 : Wallpaper Magazine)

    여하간 보위 없는 보위 전기, <벨벳 골드마인>은 화려한 캐스팅(풋풋한 크리스찬 베일과 유명해지기 전의 토니 콜렛을 볼 수 있다)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진입 장벽이 제법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영화가... 상당히 기이하거든. 첫 장면부터 범상치 않은데, 공들여 설명해가며 초점을 맞춘 인물이 반드시 주인공일 거란 관객의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기대를 가차 없이 배반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브로치 운운하며 어린 '잭 페리'에게 서사를 부여했다가 곧바로 눈길을 거둬버리는 카메라는 이후 브로치라는 매개를 통해 브라이언과 연결되는 잭을 다시 한번 비춘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브라이언. 잭은 이미 카메라의 관심을 잃은 주변 인물에 그치고 만다. 마치 잭 페리(그리고 그 꿈은 원대했으나 이내 스러져 간 수많은 애매한 영웅과 낙오자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연출. 결론적으로 <벨벳 골드마인>은 브라이언 슬레이드(혹은 데이비드 보위)를 주인공으로 삼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제는 평범해진) 괴짜들과 시대 자체에 대한 찬가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달까.


피터팬의 사랑과 전쟁


(출처 : 네이버 영화)

    시대의 괴짜들 중에서도 가장 거침없이 스스로를 불사지르는 건 역시 두 주인공, 브라이언커트다. 두 사람은 공동 작업을 빌미로 우당탕탕 요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데 그 관계라는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가 불가능한 게, 커트는 스타성은 있지만 그야말로 일자무식에 순박하기까지 한 망나니고, 브라이언은 좀체 속을 알 수 없는 데다가 허상처럼 겉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음악적 교류도 글쎄, 그 상업적 성공만큼 대단해 보이지는 않고.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교류의 진실성과 깊이 면에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향한 감정만큼은 진심이었고 또 의외로 굉장히 순수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설령 둘의 관계가 제삼자에겐 극도로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것으로 비쳤을 지라도 말이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브라이언과 여러 감정이 엉킨 마지막 눈 맞춤 뒤에 차에 올라타 홀연히 떠나버리는 커트. 그 씁쓸한 장면에서 나는 그간의 기묘하고 파괴적인 동행이 다름 아닌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러닝타임 내내 전시되는, 본래의 추함을 감추고 화려하게 치장된 온갖 것들과는 반대로, 두 사람의 관계는 얼핏 추해 보이지만 사실 알맹이는 아름다웠다고. 그 사랑이 몰락한 까닭은 아마 두 연인이 울부짖고 발버둥 치며 세상과 싸우는 법 말고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살아갈 수 있는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 테다.

    브라이언이 총살 자작극을 꾸며내면서까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근본적인 원인도 어쩌면 사랑의 상실인지 모른다.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서, 영광밖에는 남지 않은 채로, 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그저 음악이 되어 박제되고자 한 남자. 모두가 변해 떠나는데, 브라이언은 얼굴도 사람도 위치도 모든 것이 변한 채로 빛나던 과거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아이러니. 그의 진짜 정체는 홀로 영원한 환상 속에 사는 피터팬이 아닐까.

(출처 : 네이버 영화)


불닭맛 음악영화라니


    놀랍게도 본작은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주연의 <캐롤>을 연출한 토드 헤인즈가 199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아련하고.. 고요하고.. 포근한... 한마디로 '순한 맛'의 <캐롤>과는 달리 <벨벳 골드마인>은 눈물 나게 매콤하다. 정신없는 반짝이의 향연, 기괴한 분장과 파격적인 설정의 뮤직비디오, 냅다 엉덩이부터 까는 반사회적(?) 퍼포먼스까지. 아니 50년 전이면 요즘 젊은이들의 조부모~부모님 세대인데, 이게... 가능한 건가? 싶은, 실로 동공 지진이 절로 나는 광경의 연속이다.

    그 와중에 인기 절정 락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연기한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자태는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실제로 노래를 잘 부르는 그는 이후 몇 편의 음악 영화에 더 출연했지만, 그를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준 이 작품에서의 매력이 단연코 압도적이다. 제스처, 애티튜드, 흩날리는 장발과 성별을 알 수 없는 의상까지 너무나 70년대 글램 록 그 자체인걸. 더군다나 젠틀하고 성실한 이미지인 이완 맥그리거가 거칠고 충동적인 락스타 역을 찰떡같이 소화했다는 것 또한 하나의 반가운 충격!

요염한 포즈 뭔데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별미는, 글램 록에 열광하는 10대부터 한물간 락스타의 미스터리한 행적을 되짚어나가는 신문기자까지를 소화한 크리스찬 베일의 찌질한 연기다. 이 사람이 정녕 배트맨이 맞단 말이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비죽 내민 입술과 소심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가락은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

70년대 '요즘 애들' (출처 : 네이버 영화)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영화 전개 방식이 파편적이고 정신없어서인지, 어째 글도 중구난방 오락가락하다 어정쩡하게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아무튼, 이토록 탐미적인 세대가 무려 반 세기 전에 지구 어딘가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매혹적이지 않은가. 화성에서 온 락스타들의 반란이 결국 기성세대로의 편입으로 종결됐다는 건 씁쓸하지만, 그래도 그토록 강렬한 젊음을 지나왔다는 건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 마디 지나간 황금기에의 황금빛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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