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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Nov 12. 2022

이 영화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인터스텔라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근래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IMAX관에서 재개봉했다. 이미 여러 번 봤던 작품이지만, 장대한 화면 속 놀란의 놀라운 우주를 감상할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사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30분 정도는 오열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에서 그쳤다. 아마 드넓은 화면 속 세세한 디테일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하느라 그랬을 테다. 정말 드물게도 치밀한 수작이라고.


내 이름은 닥터 만, 빌런이죠


    <인터스텔라>의 흡인력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모험이나 생존, 다이내믹한 플롯 대신 철저히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연출에서 기인한다. 가령 '외딴 행성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된 줄 알았다'던 만 박사(by 맷 데이먼)는, 쿠퍼(by 매튜 맥커너히)의 우주복 헬멧을 부수면서 또 한 번, '당신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한다.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문장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사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 혹은 그렇게 할 마음이 없다는 것. 따라서 쿠퍼 일행에 의해 수면 장치에서 깨어난 만 박사가 내뱉는 '죽을 준비가 된 줄 알았다'는 말은, 자신은 죽고 싶지 않으며 생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내에서 가장 빌런의 역할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관객은 마냥 그를 비난할 수 없다. 누구라도 두렵지 않겠는가. 말로는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만 박사는 입만 산 비겁자인 동시에 (지구에선) 존경받는 연구자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비슷한 구조의 대사를 반복함으로써, 만 박사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별을 쫓는 사나이


    주인공인 쿠퍼 역시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천명한다. 장인어른과의 대화 속에서 넌지시 드러나듯이, 쿠퍼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고, 언제나 더 크고 넓은 세계로 떠나고 싶어 했다. 아들 톰(by 티모시 샬라메/케이시 애플랙)과는 달리 쿠퍼는 타고난 농부가 아니다. 그는 탐험가이고, 개척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딸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우주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고초를 예감하면서도 말이다. 그래도 그때는 함께할 일행이라도 있었지, 간신히 모험을 끝내고 머피(by 매켄지 포이/제시카 차스테인/엘렌 버스틴)가 있는 우주 정거장으로 돌아온 뒤에는 어떤가. 브랜드 박사(by 앤 해서웨이)를 구하기 위해 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가 되어, 미지를 향해 떠난다. 누군가를 구원한다는 숭고한 명분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머피의 법칙


(출처 : 네이버 영화)

    한편 쿠퍼의 자식들인 톰과 머피는 한배에서 나 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물과 기름만큼 다른 인간들이다. 천부적인 농부의 기질을 갖고 태어난 단순하고 보수적인 톰. 그와는 대조적으로 놀랍도록 영민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머피.

    머피는 끝끝내 (아버지가 돌아올 거라는,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끝끝내 자신의 힘으로 그 희망을 실현해냈다. 이 영화를 네댓 번 보는 동안 항상 쿠퍼의 슬픔에 공명했는데, 이번에는 머피의 그 올곧은 의지에 감응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국 모든 것은 머피의 이름대로 되었다. 일어날 일은 전부 일어나고 말았으니. 쿠퍼는 탐험가로 태어나 농부로 살 줄 알았으나 마침내 운명이 이끄는 우주를 향해 나아갔고, 머피는 믿음으로 사랑으로 잃지 않은 마음으로 답을 찾아내고 인류를 구원했다.


지금까지 이런 SF는 없었다


    <인터스텔라>의 재미있는 포인트 하나는, 쿠퍼의 자식인 쿠퍼가 세상을 구했듯이,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 자식 세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쿠퍼와 장인어른의 대화에서 유추 가능한 내용으로, 장인은 아마 오늘날의 2-30대들과 동시대를 산 인물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경험해보지 못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어렴풋이나마 우리의 가슴에 새긴다. 쿠퍼는 머피를 살리기 위해 낡은 트럭을 몰고 떠나면서 조수석의 담요를 들춰본다. 혹시나 두고 온 딸아이가 지난번처럼 그 아래에 숨어있을까, 하고. 당연하게도 머피는 그곳에 없다.

    보통은 쿠퍼가 중력에 휩쓸린 사이 어른이 되어버린 톰과 머피의 영상 편지가 재생되는 장면, 그리고 임종 직전의 노인이 된 머피와 여전히 젊은 쿠퍼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는데, 이번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그 단순하고 치밀한 장면이 가장 슬펐다. 여러 번 봤지만 아직도 이렇게 처음 발견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거겠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므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아직 한 번도 관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당당하게 <인터스텔라>를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다. 완벽한 우주 영화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질을 모두 갖췄으니까. 두렵고 아름다운 우주의 풍경, 살 떨리는 모험담, 순도 높은 감정과 인류에 대한 깊은 애정이 이 영화 한 편에 모두 담겨있다. 영화음악계 큰손 한스 짐머의 감명 깊은 사운드 트랙은 덤.


단 한 마디 두 번째로 추천하는 건 <인셉션>, 세 번째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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